나는 오랫동안 수업을 통제하려 애써 왔다.
정확히 말하면,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각자의 학습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상호작용이다. 교사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고민하고, 학생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 단순한 문장 속에 수많은 선택과 책임이 숨어 있다. 나는 매 수업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이 수업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학생은 어디까지 도달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시각장애 학생의 수업은 교사의 말에서 시작해 교사의 말로 끝난다. 교사의 설명이 곧 칠판이고, 교사의 언어가 곧 교과서다. 그래서 교사의 역량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으면 수업은 금세 메말라 버린다. 재미없는 수업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은 학습을 포기하게 만든다. 나는 그 과정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수업은 늘 나에게 두려움이자 책임이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개별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지닌 채 교실로 들어온다.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학교의 교실에서는 강의식 수업이 반복된다. 설명하고, 듣고, 끝나는 구조. 그 안에서 학생은 점점 수업의 주체가 아니라 관객이 되어간다.
나는 그 장면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수업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급 안에 다양한 콘텐츠를 들였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학생이 직접 탐색하고 선택하도록 했다. 교사의 설명은 줄이고, 학생의 질문이 늘어나도록 설계했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문제를 제시했고, 완성보다 과정을 말하게 했다.
그렇게 수업은 조금씩 달라졌다. 교실의 공기가 바뀌었고, 학생의 목소리가 살아났다.
AI 기반 교육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교사가 설계한 구조다. 교사가 학생을 이해하고, 학습의 흐름을 설계하며, 평가와 성찰까지 책임질 때 비로소 AI 수업은 의미를 갖는다. AI는 도구일 뿐, 수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교사의 판단이다.
나는 교사를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설계자라고 생각한다. 학생을 파악하고, 수업을 구성하고, 실행하며, 그 결과를 성찰하는 사람. 그 반복 속에서 교사는 성장한다. 교육과정은 유연하게 운영되어야 하고, 교실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없어야 한다. 학습자는 언제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수업을 통제한다는 것은 학생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내 태도를 통제하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어디까지 욕심낼 것인지, 언제 멈출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교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성실히 집중하는 사람만이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
수업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매일 같은 교실, 같은 학생, 같은 시간 속에서도 다시 질문하고 다시 설계하는 일.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조용히 통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