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의 체온

by 이만희

12월의 새벽은 느리게 깬다. 세상의 소음이 도착하기 전,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두 손을 모으고 잠시 눈을 감는다. 멈춘 호흡 사이로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들여다본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학교 가는 길에서 책을 읽는다. 한 문장을 들여다보면 낡은 생각들이 흔들린다. 운동장을 천천히 돌며 숨을 고르고, 조회 의자를 가지런히 놓는다. 그 사소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정직해지는 법을 배운다.

수업을 하고 업무를 처리한다. 건의사항을 읽는 일은 겉으로는 행정이지만 속으로는 마음을 더듬는 작업이다. 학생의 작은 질문 하나, 수업 뒤에 남긴 한숨 하나가 나를 멈추게 한다. 교육은 늘 예기치 않게 나를 흔든다.

해 질 무렵이면 수영장으로 간다. 물속에서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은 문장 하나를 비워내는 일과 닮았다. 무언가를 버려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는 단순한 진실을 여기서 배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식탁 위 단백질 한 접시는 오늘도 살아냈다는 증거다.

나는 글을 무기로 삼는다. 휘두르는 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패로서. 세상은 중년의 교사에게 예상치 못한 상처를 건네지만 글 앞에서는 그 상처도 형태를 바꾼다. 버거운 마음이 문장을 통해 비로소 걸어 나간다.

병을 얻어 갑자기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오래 침묵한다. 그들의 하루는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침묵이 작은 문장으로 변한다. 글쓰기는 타인의 삶을 내 삶 속으로 이식하는 작업이다.

밤이 되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나를 견디기 위해서다. 한 문장, 또 한 문장을 적다 보면 흩어진 생각들이 가라앉는다. 나를 힘들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고 누군가의 표정이 밀려온다. 나는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기록한다. 솔직한 글쓰기만이 삶의 진실을 붙잡는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부족함과 결핍의 틈으로 하루를 산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큼은 그 결핍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결핍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쓰는 문장은 어떤 꾸밈보다 단단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다시 일으킨다.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도 문장 앞에서는 직면할 수 있다. 삶은 늘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문장 하나가 나를 다시 나로 데려온다.

나는 늦은 나이에 작가의 꿈을 다시 품은 사람이며 흔들리면서도 계속 쓰는 사람이다. 글 쓰는 삶이 이기는 삶이라는 말, 그 오래된 진실을 매일 새롭게 배운다.

오늘도 나는 한 줄의 문장을 통해 나를 부르고 위로하고 다시 살아낸다. 그리하여 결국, 내가 쓰는 글이 나를 지탱하고 살아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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