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라는 이름의 질문

by 이만희

교실은 늘 변해 왔다. 태블릿이 공책을 대신하는 동안에도 교실은 여전히 질문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다만 질문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무엇을 외워야 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로. 나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매일 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다.

AI 시대의 교실은 더 빠르고, 더 많고, 더 넓다. 학습자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방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그중 필요한 것을 골라 과제를 완수하거나 문제를 해결한다. 지식은 더 이상 교사의 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교실 밖에서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을 매일 교실 문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다.

AI는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노멀을 만든다. 이제 학습자는 정답을 찾기보다, 선택을 해야 한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어떤 정보를 연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알고리즘이다. 인간의 삶은 본래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 있다. 빵을 굽는 순서, 커피를 내리는 손길,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는 동선까지 모두 반복과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이 평범한 일상에서 수업의 힌트를 얻는다. 알고리즘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을 뿐이다. AI 시대의 학습자는 자신만의 휴먼 알고리즘을 자각해야 한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 생각을 정리하는 순서, 결정을 내리는 기준을 스스로 점검하고 갱신하는 힘 말이다. 수업은 그 알고리즘을 활성화하는 연습의 장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수업에서 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오래 붙든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은 지식이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이 다시 질문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통찰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갑작스러운 번뜩임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한 사람에게서 조용히 드러난다. 과제를 완수하는 힘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그 깊이에서 나온다. AI는 인간을 대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협력하고 소통하며, 서로 다른 관점을 연결해 하나의 해답에 이르는 과정은 여전히 교실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배움이다. 기술은 도구일 뿐, 방향은 사람이 정한다. 나는 그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교사로 남고 싶다.

수업의 본질은 결국 만남이다. 학생이 자신의 생각과 만나고, 타인의 생각과 충돌하며, 어제의 자신과 다른 오늘을 발견하는 순간. 그 순간을 위해 교사는 교실에 선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만남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교실로 들어간다. 정교하게 준비한 수업 안을 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은 질문이다. 그 질문이 살아 있는 한, 수업은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수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조용히 지켜보고 싶다.

이전 27화삶을 통제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