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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un 15. 2021

언니들의 구멍

- 사랑해야 할 언니들의 구멍


언니들의 일상에 구멍이 많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모임이 중단되었지만

매월 넷째 수요일 숯가마찜질방에 모였습니다.


어느 날 일이 생각납니다.

“손님~ 이건 차키인데요?”     

함께 간 언니가 신발장 키 대신 차 키를 준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요즘 왜 이럴까?”      

“언니야~ 괜찮다. 옷장 키 머리에 잘 묶으면 된다~”하며 웃었습니다.      


그 전 달 모임 때 옷장 키를 잃어버렸다며

머리 숙여 목욕 바구니 속을 뒤적이던 언니      

그 언니의 머리에 옷장 키가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 똑 부러진다는 말을 듣는 언니인데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사실 그날 찜질방 오기 전부터 언니와 전 한 건 했습니다.      

함께 제 차를 타고 달리는 중      

왼쪽으로 다가온 차 안의 아이와 오른쪽 차 안의 아저씨가      

동시에 웃으며 뒤를 보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본 순간 “이이고~!”하며 소리쳤습니다.      

언니가 사 온 하얀 딸기 박스를 트렁크 위에 놓고 바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날의 화제는 건망증 누가누가 심하나였습니다.


명퇴 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우리의 왕언니는      

이웃에서 시래깃국 끓이는 냄새가 계속 나       

“어느 집에서 시락국을 계속 이래 끓이노?” 라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본인 집 냄비에서 시래깃국이 끓고 있고      

양이 반 이상 줄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어 사랑 많은 친구 A가

“나는 자는데 갑자기 우당탕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한꺼번에 삶는 다고 올려둔 계란들이 폭탄이 되어   천정, 벽이 모두 엉망이 되었더라고... 그냥 이사를 가고 싶었어~“      

그녀는 자신의 건망증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매사에 깔끔한 언니 B도 만만치 않습니다.

퇴근길 자신의 신발이 하나만 놓인 것을 보고      

“내가 진짜 정신이 없다.. 신발을 하나만 꺼냈네...”하며 울상을 하니     

후배가 신발을 꺼내 주며 심하게 웃더랍니다.      

알고 보니 후배가 장난을 쳤다고 합니다.                


함께 근무하던 시절 에피소드들도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책상 위 전화기 버튼을 자꾸 누르던 언니     

차키를 신발장에 대고 누른 친구...     

돌아보면 40대였던 그때부터 구멍이 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날 대미를 장식한 것은 매사에 칼 같은 언니 C가       

“어~ 옷장 키가 없다! 고온 방에 뒀나 보다” 하며 돌아다가      

팔에 걸려 있는 키를 보고 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녀의 총명함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밥 먹다가 그 언니 옆에 앉은 후배가      

“언니 내 젓가락을 왜 가져가는데?”     

“어? 이게 왜 내 손에 있지?”하며 웃습니다.     

최근 아들 장가보내고 대상포진으로 고생하고 나서      

실수라고는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언니도 구멍이 숭숭합니다.   

             



제가 30대일 때 4, 50대 선배들의 일화가 기억납니다.         

책을 내고 문인 활동을 하던 00 국어 선생님은 유독 심했습니다.      

교무실로 들어온 샘의 안경 한쪽이 비어 있어서      

“어~ 선생님 한쪽 안경알이 없네요?” 물어보니      

“그래요? 그래 눈이 좀 침침 하더라- 교실에서 빠졌나?”     

하며 수업한 교실로 갔다 오시더니 아이들이      

“샘~ 들어올 때부터 안경알이 없었는데요?” 하더라며 웃으셨습니다.      


다른 4, 50대분들 중에도      

양말을 두 개 신고 오거나 다른 것을 신고 오기도 하고      

퇴근 후 주차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출근하다가 ‘아차!’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심한 사례는 교무실 문을 여니 딴 학교였다는 겁니다.      

그때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남편 약 주다가 자기가 먹어버렸다는 동네언니 얘기는 거짓말 같았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구멍이 점점 많아져 갑니다.        

쿠바 여행 중 이른 아침 가게 점원에게 “커피 돼요?”라고 한국말을 하여      

30대 동생들로부터 구멍 언니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려고      

스페인 여행 중 번역기 앱에 계속 우리말 단어를 말하고 다니던 친구가     

티켓팅 직원에게 커리어가 고장 난 걸 말하려다 “고--장!!”이라고      

힘주어 말하여 폭소를 터뜨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언니들의 많은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언니들은 구멍이 많다며 서로의 ‘구멍’에 몰두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동생들은 30대 인데도 구멍이 많았습니다.      

서로의 구멍을 열심히 찾아내며 즐거워하고 한결 가까워졌습니다.   

   

심지어 돌이나 낡은 문에서도 구멍을 발견하면 반가워했습니다.     

실수 없던 막내의 옷이 화장실 못에 걸려 생긴 구멍까지도      

기뻐하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구멍이 제게는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언니들의 구멍’이 ‘오빠들의 구멍’ 보다 더 어울립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적 역할들이 더 복잡하고 많습니다.      

그러니 살아온 세월만큼 신경을 많이 써왔고      

구멍들도 더 많아지고 커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성격이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여성들의 건망증은 갱년기를 겪으며 더 심해집니다.      

때때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치매가 걱정되지만      

치매 초기 증세는 짜증이 많고 참을성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저와 언니, 동생들은 서로의 구멍으로 인해      

더 즐겁고 공감이 잘되며 훨씬 너그러워지니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아마도 각자 삶의 무게가 만든 구멍으로      

몸과 마음은 조금 더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니들의 구멍이 조금은 슬프지만      

기쁘게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돌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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