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2025

by 유브로

폴 토마스 앤더슨, PTA. 현시대에 가장 클래식한 영화를 만드는 2000년대 가장 뜨거운 감독 중 한 명이다. 한창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던 때에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를 정말 좋아했다. 2000년대에는 남들만큼이나 팬은 아니었지만 여전한 리스펙은 있었는데 <팬텀 스레드> 부터는 솔직히 약간 관심 밖에 있기는 했다. 그런 PTA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소문에는 PTA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를 걸쳐서 개봉하기도 했다.


대중적이라는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정의하는 대중적이란 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PTA는 절대 대중적일 수 없다. PTA의 영화가 거의 대부분 미국의 역사와 관습을 관통하기 때문에 한국 관객의 공감이 어려울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 러닝타임이 긴 편인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시 2시간 40분이다. 일반 대중들은 2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견디기 어려워하기도 하며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PTA의 작품 중에선 가장 대중친화적인 작품은 맞다고 느낀다.


일단 코미디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하다. 극장에서 디카프리오의 신들린 연기에 웃음소리를 많이 들었다. 혁명에 가담했지만 지금은 술에 절어 사는 소시민 역할의 디카프리오는 뭐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능력 없는 주인공 역할이라 관객들이 몰입하기에 굉장히 편하다.


또한 영화를 뜯어보면 절대 단순하지 않지만 크게 보면 이 영화는 아빠가 딸을 찾는 단순한 플롯이다. 그 아빠가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거슨일 수도 있고 숀 펜이 연기한 록조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액션 영화로써도 훌륭하다. 일단 주인공이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좋은 플롯의 기본은 행동하는 인물이 주인공인 것이라 생각하는데 밥 퍼거슨은 딸을 찾기 위해 건물도 뛰어넘으며 시종일관 달리고 달린다. 거의 어디 하나 모자란 아빠가 등장하는 <테이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더욱이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밥 퍼슨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강렬하다. 영화의 초반부를 강렬하게 이끄는 테야나 테일러가 연기한 퍼피디아. 알고 보니 테이나 테일러는 가수라고 하더라. 퍼피디아는 영화 초반부에 압도적인 에너지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사실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영화상 전사에 해당하는 어쩌면 짧은 부분인데, 그럼에도 영화 내내 그녀의 그림자가 지워지질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영화의 메인 빌런이자 또 다른 주인공이며 어쩌면 가장 불운한 플롯의 캐릭터인 숀 펜이 연기하는 록조. 솔직히 첫 등장 때는 숀 펜인지도 못 알아봤다. 짧게 정리한 머리를 침을 발라 넘기는 모습부터 어딘가 불편하게 걷는 그 걸음걸이까지, 안톤 쉬거, 한스 란다같은 역사에 남을 악역 목록에 이름을 추가해야 한다.


매 순간 뿜어내는 여유로움의 소유자인 베네치오 델토로가 연기한 세르지오 센세. 배우가 갖고 있는 매력을 잘 활용한 훌륭한 캐릭터다. 진정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밥 퍼거슨의 딸 윌라 퍼거슨. 체이스 인피니티라는 신인 배우가 연기하는데, 단연코 스타의 탄생을 짐작하게 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들이 매년 새로 등장할까.


예고편부터 인상 깊었던 음악. 아직도 귓가에 그 리듬이 반복되는 듯 기억난다. 후반부 차 추격신을 훌륭하게 담아내는 카메라. 영화 속에서 세르지오가 흥분하는 밥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오션 웨이브~" 파도를 생각해서 진정하라는 말 같다. 굽이굽이 캘리포니아 언덕을 넘는 3개의 차의 카 체이싱은 마치 그 파도 위를 넘나드는 서핑보드와도 같았다. 시종일관 시끌벅적한 영화 중 가장 조용한 시퀀스지만 쌓아왔던 긴장감이 증폭되는 카 체이싱 장면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위와 같이 어쩌면 대중 영화로써 갖춰야 할 거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2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단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이것이야말로 연출력이라는 관객을 다루는 감독의 능력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미국의 역사,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한국 관객들과는 거리감이 있을 수도 있으며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감독의 개성 있는 터치가 늘어날수록 그것은 누군가에겐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적이고 자시고는 영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는 점을 밝힌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다만 영화를 보기 전 대중적이다, 오락영화다 등의 소문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런 쪽으로 자꾸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만약 대중적이라는 의미를 "대중들이 보고 느끼면 좋은"에 둔다면 이 영화는 매우 대중적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까보면 가볼수록 겹겹이 다양한 상징과 의미들을 영화에 담아놓았다. 물론 그런 것들 따위 몰라도 오락적으로도 훌륭한 영화다.


영화는 한때 혁명을 했던 혁명가의 오늘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혁명가들이 결국은 서로를 밀고하고 서로를 증오하며 최후를 맞이하기 쉽상이고 그나마 살아남은 밥 퍼거슨은 술에 절어 평생을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간다. 혁명의 반대에 있는, 영화에서는 이름 바 크리스마스 클럽이라고 불리는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는 기득권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을 유지하며 그 안에서도 결국 서로를 짓밟으며 기득권의 견고함을 다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고인물이 되어버리는 두 집단. 영화의 주인공이자 딸을 찾는 두 아빠인 밥 퍼거슨과 록스는 혁명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과 기득권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집단에서 버림을 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라면 밥 퍼거슨은 미래를, 딸을 지켜내려고 했고 록스는 미래를, 딸을 제거하며 단절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는 가족영화로서의 엔딩을 맞이한다. 무능력했던 밥은 딸을 구해냈고 밥의 과보호에 답답해하던, 아빠와 갈등했던 딸도 스스로를 지켜내며 아빠와 재회한다. 과거의 혁명가였던 밥은 비로소 딸을 지켜내려는 과정 속에서 미래를 지키고 진정한 혁명가로 거듭나는 듯 보인다. 딸 역시 영웅이었던 엄마가 밀고자라는 사실도 받아들인 채 아빠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지켜내며 엄마의 의지를 이어받아 또 다른 혁명가가 된다. 단순히 가족영화로서의 엔딩을 뛰어넘어 세대가 세대에게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엔딩이다. 밥과 윌라를 보면서 결국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고 느끼게 된다.


"지금은 몇 시인가" 프렌치 75의 암구호인데 밥 퍼거슨은 아이러니하게도 시간 속에서 그 암구호를 잃어버렸다. 그 암구호를 말하지 못해 프렌치 75의 일원과 통화로 다투는 장면을 지독하게도 보여주는데,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코미디 장면임과 동시에 왜 그렇게 지독하게 담아냈는지도 기억할 만한 장면이다. "지금은 몇 시인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미래를 선택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질문으로 느껴진다.


나도 궁금해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유튜브나 커뮤니티를 통해 찾아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보고 이런 부분도 있구나, 하면서 사유하게 되는 영화는 또 오랜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와 영화다" "시네마네" 이런 말들을 혼자 중얼거렸다. 호들갑 떨고 싶진 않지만 극장에서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을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정말 시네마란 무엇일까? 물론 영화라는 뜻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모든 영화에게 시네마라는 호칭을 부여하지 않는다. 근데 우리가 부르는 시네마, 클래식,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솔직히 나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답도 없을 것이고, 그건 그냥 우리가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다. 혹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클래식이며 그것이 시네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본 직 후 생각하게 된다. 거의 모든 부분이 훌륭한 작품, 본인 커리어의 절정을 뛰어넘어 또 다른 절정에 오른 감독이 만들어낸 이 작품이야말로 시네마이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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