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OTHER CHOICE, 2025
소설 <The Axe>를 영화화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20년 전부터 인 것 같다. 2025년, 마침내 박찬욱 감독이 이병헌 배우와 함께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왔다. 화려한 캐스팅과 추석 개봉으로 화제를 모았다. 나는 가족들과 연휴 때마다 영화를 보는 루틴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어쩔수가없다>를 추석 루틴 영화로 보게 되었다.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대량 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가장 만수가, 재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다. 이 로그 라인은 이미 많은 홍보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로그 라인이 만수의 제거 행동들에 대한 일종의 스포가 되어버린다. 조금씩 비틑어져있긴 하지만 만수의 제거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개인적으론 플롯의 쫀쫀함과 긴장감이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이 로그 라인 자체가 주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만수는 본인을 대량 해고한 회사와 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해고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오히려 본인과 같은 처지인 노동자들과의 다툼을 선택한다. 제거하려고 하는 1,2순위 범모와 시조는 만수만큼이나 재취업에 희망을 갖고 있으며 만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는 범모와 시조는 종이의 장인이자 일종의 예술가처럼도 보인다. 두 장인, 예술가는 한 명은 해고당해 술에 절어 살고 있고 또 한 명은 서비스직을 하면서 전전긍긍 살고 있다. 두 사람의 현주소가 나는 예술가로서의 사망선고로 보였다. 만수는 그런 범모와 시조를 실제로도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만수는 세 번째로 경쟁자가 아닌 선출을 제거해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본인의 경쟁자가 될 것 같은 사람들을 가짜 회사까지 만들어 선별한 것까지는 흥미로왔으나 그다음 스텝이 선출을 죽여서 공석인 일자리를 만들려는 욕망으로 이어지지는 것에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 되긴 한다. 선출은 초반부터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해 경쟁자라기보단 선망의 대상의 이미지였다. 물론 선출도 한 명의 노동자지만 앞서 그가 제거한 사람들과는 다른 성격의 노동자라는 면에서 만수의 욕망의 일관성이 깨진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가 없기에 일종의 공범이 되어버리는 가족들과, 또 그 사이에서 예술은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딸의 존재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만수가 결국엔 하는 일이 AI 기계들을 체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나는 더욱이 한 명의 장인이자 예술가의 사망을 느낀다. 그럼에도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땅에 묻고 재취업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 가장의 현실이기에 씁쓸함을 남긴다. 잠깐이지만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실을 짜는 장인이셨는데 만수와 똑같은 대량 해고를 당해 회사원으로 사시게 되며 삶의 생기를 잃어버렸었다. 그 모습이 만수를 비롯한 범모 시조에게서 보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톤들에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인데, 손예진이 연기한 미리는 과장된 톤도 그 캐릭터 고유의 톤으로 느껴지며 자연스러워 보기 좋았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현실적이며 한 편으론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어서 되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배우들의 연기는 아역들까지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색깔이 너무 강한 캐릭터들이어서 배우의 매력을 살렸다기보단 캐릭터로써 부각된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사회적인 영화이며 디테일도 훌륭한 영화인데,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그렇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그렇고 스스로 이 영화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개인의 삐뚤어진 욕망과 그 깊은 욕망을 과감 없이 보여주는 분이신데, 이번 작품은 그런 만수의 욕망에 몰입이 되질 않았다.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게 되는 그 계기가 정말 어쩔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대량 해고와 노동자라는 소재에 대한 진정한 영화적 탐구보다는, 감독 특유의 연출과 미장센을 살리는 그 소재를 사용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이 부조리극에 공감하지는 못했다. 나는 진짜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 그렇기에 진짜 어쩔 수가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바랐나 보다. 스타일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화면으로 드러나는 장면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엔 전작들과는 크게 다르지 않는 박찬욱 감독님의 미장센들을 보고 온 기분이다. 노동자, 그리고 계급의 욕망을 다룬 이야기보단 결국엔 엘리트였던 사람들이 엘리트의 자리를 붙잡으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진짜 현실을 다룬 블랙 코미디 같진 않아서 딱히 어쩔 수가 없어 보이지 않다.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의 능력이 양껏 버무려진 것은 알겠으나, 이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