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ward Bound, 2025
<초행>, <철원기행>을 만든 김대환 감독의 신작이다. 철원에 사는 가족들, 결혼을 강요받는 신혼부부 등 삶과 붙어있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순간 속의 공기를 잘 포착해 내는 감독이다. 두 작품 모두 수려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철원기행>은 훌륭한 가족영화라고 생각한다.
<비밀일 수밖에>는 전작보다 좀 더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한다. 남편을 잃고 아들은 유학을 보낸 채 혼자 지내는 정하. 캐나다의 살던 아들 진우가 휴가를 내서 한국에 들어온다. 영제 Homeward Bound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도의 뜻인 것 같다. 진우가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정하가 진정한 마음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들 진우와 여자친구 제니는 갑작스러운 결혼을 선언한다. 선포에 가깝다. 어른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당장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자신들의 방식으로 결혼을 진행한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한국에 들어온 제니의 꼰대 아빠와 그런 아빠를 또 꽉 쥐고 있는 엄마. 갈 곳이 없어 정하의 집에 머물게 된다. 정하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여자친구 지선까지 더해져 결국 한 지붕 아래 6명이 모이게 된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지만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6명의 가족들은 각자의 비밀을 품고 있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결국 모든 비밀은 타인에 의해 드러나지만 막상 그렇게 감췄던 것에 비해 비밀이 밝혀진 후 관계의 변화도 없고 리액션도 미비하다. 이 이상한 동거의 며칠이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도 불분명하다. 영화는 지나치게 따뜻한 톤으로 그 시간을 그려내지만 결국 인물들이 얻은 깨달음은 “타인보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겠다"라는 무심한 태도에 가깝다.
재밌는 설정들과 캐릭터는 그저 설정에만 머물 뿐이고 이야기의 진전이 없다. 그저 이유 모를 춘천 여행을 이틀이나 하지만 그렇다고 멋진 춘천의 풍경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는 이제 다툴 때가 됐는지 이유 모를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산으로 가듯 정말 산으로 올라간다.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야만 하는 캐릭터들만 존재한다. 소통이 되지 않고 갑갑해야만 하는 제니의 아빠 문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듯하지만 결국 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인물로만 남는다. 착하디착하지만 끝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머니 정하 역시 끝까지 착한 태도만 유지한 채 어느 순간 성장했다고 선언된다. 그러나 그 성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옆에는 그저 쿨해야만 하는 여자친구 지선이 자리한다. 오히려 정하와 지선의 사랑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전작들도 사건이 뚜렷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전작들엔 큰 사건 없는 일상 속에서 관계의 숨겨진 핵심을 캐치했던 눈부신 순간들이 있었다. 이번 작품은 좀 더 대중적인 터치를 해보려고 노력한 티가 났기에 기대가 컸는데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다. 캐릭터 설정들은 전작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뚜렷하고 개성이 강해졌다. 그러나 영화의 음악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쁘다. 연속극이나 아침 드라마에 나올법한 보편적이고 진부한 음악이다. 대중적인 노력을 한 것에 비해 정작 변하지 않은 널널한 촬영은 비밀을 다루는 영화의 긴장감을 덜어낸다. 전작들도 서로에게 말을 아끼는, 다소 답답한 캐릭터들이 있지만 그것이 관계의 핵심을 오히려 들어냈다면 이번엔 오히려 핵심을 회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영화의 전체 톤이 균형이 안 맞고 영화 속 인물들 마냥 조화롭지가 못하다.
개인적인 기대가 컸기에 아쉬움도 그만큼 크다. 사실 독립예술영화로 세 번째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김대환 감독의 성취는 놀랍다. 그만의 스타일로 세계관을 이어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또 다른 작품 활동을 향한 미래를 모색했다고도 느껴진다. 내 추측이 맞건 아니건 세 번째 작품의 개봉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비록 결과물이 완벽하게 조화롭지 못했지만 따뜻함을 영화 속에 계속 담아내려는 그의 행보는 언제나 지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