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100 Meters, 2025

by 유브로

정말 우연히 원작을 봤다가 완전히 매료됐었다.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를 다룬 작품인데 스포츠물을 넘어서 인생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리고 극장판이 개봉한다는 걸 유튜브 예고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 개봉날 바로 예매해서 관람했다.


원작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자면, 무엇보다 주인공 토가시가 매력적이었다. 타고난 달리기 실력의 토가시는 이기는 것에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열정을 다해 달리기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을 되려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때론 열정을 잃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 어린 날의 재능도 사라져 갈 때쯤 사실은 자신이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고 달리기를 평생 사랑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 인물의 입체성이 참 기억에 남는다.


또한 평범한 소년만화와 다르게 타고난 재능을 갖은 인물이 주인공인데, 그 인물이 자신보다 부족한 인물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타고난 소년이 처음으로 패배의 위압감을 느끼거나 친구들 사이의 계급을 이용하는 묘사가 참 기억에 남는다.


원작을 좋아했던 입장에서 극장판을 보는 것은 어렵다. 그건 <100미터>, 이 작품뿐 아니라 모든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그렇다. 계속 비교하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하고 그런다. 순수하게 이 작품만으로 평가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극장판 <100미터>는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담았지만 한편으론 원작의 큰 매력 포인트를 과감히 생략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만으로도 100미터라는 그 10초의 순간, 스포츠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 그 스포츠에 모든 것을 건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과감히 생략된 부분들이 내가 이 작품을 좋아했던 요소라는 것이 개인적으론 가장 큰 단점이었다.


원작은 어디까지나 토가시라는 인물의 일대기였다. 그는 비범한 인물이다. 어릴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 그가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나,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압감을 느낄 때, 그리고 결국 평범한 사람이 됐을 때, 그런 매 순간마다 느끼는 속마음들. 부끄러워서 꺼낼 수 없는 우리 삶의 한 이면들을 보는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런 감정선들이 극장판에선 생략되면서 원작에 비해 토가시가 평범하고 그저 착한 인물처럼 그려져서 매력이 떨어졌다.


또한 원작과 극장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미야의 분량이다. 물론 코미야는 원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토가시의 초등학교, 고등학교, 성인 총 3개의 시절이 등장하는데 사실 초등학교 시절이 가장 매력적이고 그 초등학교 시절은 토가시와 코미야의 우정 혹은 라이벌 의식 등을 메인으로 다룬다. 원작에서는 어디까지나 토가시의 시선으로 토가시가 코미야에게 느끼는 감정을 더 깊게 다루며 개인에게 더 집중했다면 극장판은 코미야의 개인적인 분량을 추가하며 두 사람의 대결구도에 집중한 편이다. 더 많은 사람이 보길 원하는 각색의 방향이라고는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두 명의 캐릭터를 모두 못 살리는 선택처럼 보인다.


그 외에도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조연들의 전사들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서 생략이 됐는데, 결과적으로 평범한 스포츠물, 평범한 소년만화 쪽에 가까워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원작과의 비교를 하면 끝도 없을 테지만, 내가 원작을 참 좋아했음을 다시 깨닫기도 한다. 원작의 마지막 컷이 극장판 엔딩에 그대로 나올 것을 기대했던 나의 입장에선 지금 극장판의 엔딩이 다소 아쉽다. 그 좋은 엔딩 컷을 왜 안 썼을까. 그냥 그대로 스틸컷처럼 넣었어도 모든 각색이 용서됐을 텐데.


애초에 그림체가 훌륭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투박하지만 표정 묘사가 디테일한 것이 매력적이었고 특정 장면에서 폭발적인 강조를 하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다. 극장판은 그런 원작의 그림체를 오히려 더 발전시켜서 잘 담아냈다. 일본 소도시 풍경이나 달리기를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연출도 좋다.


어쨌든 비교를 떠나 재능과 열정, 더 나아가 인생의 방향까지 논하는 작품이다. 한 인물의 어린 시절부터 그 재능이 가장 뜨거운 고등학교 시절도 지나 그 재능이 소진된 후까지를 그린 작품은 많이 없을 것이다.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우리가 하는 일, 혹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우리가 열정을 쏟는 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이것을 왜 좋아하는가. 열정을 쏟지만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혹은 나의 전성기가 지나갔다고 느끼는 순간, 혹은 매번 나를 가로막는 무언가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다양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혹시라도 이 작품을 원작을 보지 않은 채로 먼저 본 사람이 있다면 원작을 단연 추천하고 싶다. 그럼 비교하는 재미부터 해서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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