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 Simple, 2019
시나리오 권태기다. 수정을 해야 하는데 방향성도 모르겠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많이 봐야겠다 싶었고 무작정 보기보단 좀 룰을 가져보자고 해서 코엔 형제 영화를 정주행 해보기로 했다. <블러드 심플>. 그들의 데뷔작이다. 예고편을 만들어 투자자들을 찾아다녀 모은 돈으로 2달 동안 제작한 영화다.
불륜으로 시작해, 총, 사립탐정, 빛과 어둠 그리고 피까지 누아르 장르의 소재들을 모두 가져왔다. 마티는 본인의 아내 애비와 본인의 술집 직원 레이의 불륜을 알게 되고 사립탐정 비저에게 두 사람의 살인을 의뢰한다. 하지만 비저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돈 만 챙기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깜깜한 밤 차에서 시작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 라이트에 비치는 두 남녀, 억수로 내리는 장대비, 빛과 어둠의 대립으로 축축하고 우중충한 필름누아르의 오프닝을 만들어낸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녀, 살인 청부를 하는 남편, 돈만 챙기려는 사립탐정, 한 번의 실수와 오해 그리고 죄책감들로 꼬이고 꼬여 결국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피를 보게 된다.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게 분위기를 끌고 가며 단 한 컷도 허투루 쓰지 않는 코엔 형제의 묵직한 연출력이 놀랍고, 역시 데뷔작이었던 배리 소넨펠드의 과감한 촬영과 빛을 사용하는 센스가 훌륭하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조명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강하게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꼬이고 꼬이는 부조리극 자체가 지금까지도 코엔 형제를 상징하는 색깔이자 그들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거장의 데뷔작을 보는 흥미로움. 영화 속에서 들끓고 있는 뜨거운 야망이 오래도록 잔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