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메일

by 유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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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빠른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운동을 가기 전 소화를 시키며 유튜브를 보던 여름날 저녁. 메일 알람이 울렸고 별생각 없이 메일을 확인했다. 3년 전 촬영한 내 단편영화를 배급해주고 있던 배급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내 영화가 모 영화제의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되었다고.


나는 몇 년 만에 행운같은 기회가 찾아와 올해 가을 새로운 단편영화를 촬영할 계획이다. 근데 3년 전 촬영한 영화가 영화제에 진출작으로 선정되었다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 첫번째. 기쁘다기 보단 놀라운 것이 두번째.


3년 전, 나에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었고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로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영화를 만들었었다. 운이 좋게 어떤 배급사에서 내 영화를 배급해주기로 했었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제 선정 소식도 없었다. 출품 관련된 메일들은 종종 왔지만 시간이 이젠 너무 지났고 최근에도 메일이 가끔 오길래 아직까지도 배급을 하고 있는 건가? 하면서 놀라워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 정도면 나의 영화는 수명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쉬웠다. 안간힘을 다해서 만들었던 영화였기 때문에.


내가 받았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만들었던 영화였지만 난 그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상처를 받았었다. 그전까지 연출을 하는 것이 그럼에도 즐겁다고 생각했지만, 그 영화 이후로는 연출을 하는 것이 괴롭다고 느끼게 됐다. 약간의 트라우마. 스텝 간의 불화도 있었고, 나 역시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었다. 구멍이 많은 준비로 진행한 영화의 후폭풍 또한 거셌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컸다. 이런저런 이유들.


3년 전 영화를 완성하고부터 오늘까지의 시간들, 난 그 시간들을 방황했다고 표현한다. 갈팡질팡,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맸다. 포기할까? 말까? 매번 생각이 바뀌고 목적이 바뀌고. 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음에 자책했다. 좋은 일도 왕왕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스스로를 포기해가고 있었다. 그저 급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아마 난 안될 거야. 그래서 나 스스로를 방황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에게 모질었다. 아마 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쨌든 안간힘이 담긴 영화였기에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스텝들도 정말 안간힘을 썼었으니까. 영화에 대한 꿈은 계속 버리지 않았다. 글도 매일 같이는 아니지만 꾸준히 썼다. 그리고 올해.. 나에겐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스스로에게 모진 편이라서 내가 잘해서 뭘 얻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자체가 기적 같고 행운 같다. 하지만 올해는 지지리도 안되던 일들이 마치 운명처럼 잘 풀리는 것만 같아서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방황했던 시간들이 있기에 행운도, 기적도 찾아오는 것 같다. 앞으로도 스스로 모질겠지만 그럼에도 방황하는 시간을 의미 없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 포기하지 않는다면 실패하는 것은 없다. 방황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버티고 있는 것이니까.


며칠 전 생일이었어서 이런저런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나는 전에는 하지 않는 말 같지도 않은 덕담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버티면 좋은 날 올 거야. 내가 당신들의 내일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올 것이라 믿는다. 버틴다는 것, 방황한다는 것은 그럼에도 계속 꿈꾸고 있는다는 것이니까.


이래저래 다시 내 영화를 보게 된다는 것이 힘들지만, 몇 년 전 촬영한 영화를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 그런 기회가 찾아와 기쁘다. 무엇보다 3년 전 영화를 이제 드디어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다. 어쨌든 마음의 짐 같은 영화였는데 어떻게든 상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드디어 후련하게 다음 스텝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지만 그 누구보다 당신에게 감사하다. 오랜만에 불러본다. 당신에게



(2022년 6월에 쓰여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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