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보고 온날. 오랜만에 다시 영주에 다녀왔다. 가기 전부터 뭔가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는 전처럼 슬프지는 않아서일까. 나는 갑작스럽게 마주한 아빠의 부재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한없이 슬퍼했고, 따로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뭐에 홀린 듯 열심히 일을 했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아빠가 이젠 없으니까. 지금 우리 가족은 돈이 없어서 고통받지 않는 오늘을 살고 있다. 잔인하게도 우리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돈, 돈이었다. 그래서 슬프지 않게 된 것이다. 삶이 행복과 가까워져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아빠를 닮은 누군가가 스쳐 지나갈 때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던 그때와 달리..
어쨌든 난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또 눈물을 보였다. 그것은 내가 가장 최근 아버지를 보러 왔을 때 비석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이를 악 물고 해내야겠다고 다짐했었던 그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대단한 것을 해낼 거라고 울며 다짐했을까. 지금 내가 무언갈 해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아빠를 마주하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난 엄마를 지켰고 동생을 보살폈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어쨌든 우리 가족은 당신의 부재를 어떻게든 이겨내고 있음을. 뿌듯하다기 보단 많이 변했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내었다는 생각들. 그래서 어떤 때보다도 적고 짧은 눈물을 흘렸다. 이제 뭔가 거기서 아빠가 느껴지지 않음을 느낀다. 아빠가 거기서 혼자 있는 것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았었는데, 그런 기분이 많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눈물도 적었는지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유언도 없었고 뭣도 없었다. 그래서 사실 무덤 앞에서 마음을 터놓을 때도 우린 대화가 되지 않았다. 마치 아빠가 살아있을 때처럼 대화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러다가 그냥 울었다. 난 눈물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 무덤 앞에서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나왔다. 억울해서, 딱해서, 버거워서. 하지만 오늘은 문득 내가 아무리 어떤 말을 해도 어떤 대답이 들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게 전이라고 달랐을 리 없다. 그땐 그저 내 슬픔에 내가 빠져있어서 느끼지 못했을 뿐.
이제 당신은 나에게서 떠난 걸까.
어쩌면 아빠는 어디에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거기에 있다고 믿었기에 거기에 갔을 때 한없이 마음을 놓았던 것일지도. 지금은 그저 어떤 의문들이 맴돌 뿐이다.
당신은 정말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난 것일까? 혹시 자살은? 타살은? 그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던가? 우리가 했던 저녁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을까? 어떤 기억들. 단 둘이 친가 제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가던 도중 휴게소에 들른 우리, 아빠는 나에게 "너도 담배 한 대 피고와"라고 했다. 나는 성인이었고 아빠가 내가 담배 피운다는 것을 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냥 그 말이 생경했다. 그때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했던가? 동생과 아빠가 단 둘이 영주를 간 적이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아빠는 갑자기 친구 집을 들렀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 가벼운 인사만 하고 돌아섰던 당신, 동생은 시간이 지나서도 그때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밥이라도 좀 먹지. 그냥 그렇다고만 말했다. 그냥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의문들이 쌓이고 쌓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길래?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난 정말 당신을 모르겠고, 알 수 있는 기회도 이제 없고, 주변에 물어볼 용기도 없다. 그럼 정말 이제 나에게서 당신은 떠나는 건가. 그냥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인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걸까. 그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될까? 엄마도, 동생도 결국 내가 인생을 살아내고 이겨낸다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건가.
어떻게 당신을 기억해야 하지. 그리고 뭘 기억한단 말인가.
당신은 누구였던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당신을 너무 몰랐다.
그럼 난. 당신을 모르는 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당신이 이젠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오늘.
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한 기분에 휩싸인다. 슬픔보다는 걱정이다.
어디 있는가.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어디에 있는가. 그저 과거 속에만 살고 있는가. 당신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곳에 이제 당신은 없었다. 애초에 없었겠지. 내 마음속에 있었을 테지. 이젠 그런 내 마음속에서도 어느새 멀어진 당신을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그럴 것임을.
부재는 채워지는가 채워지지 않은가?
난 부재를 채운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부재 앞에서 우린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럼 부재는 잊혀져도 되는 걸까.
모든 기억도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혀지듯이 당신도 그렇게 잊혀져도 되는 걸까.
정말? 이렇게 쉽게? 당신은 나의 아빠인데?
슬픔보다는 걱정이다. 그래서 일기를 쓴다. 떠나가는 부재조차도 새겨놓기 위해.
(2021년 11월 쓰여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