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er's Crossing, 1990
<밀러스 크로싱>은 도박업자이자 마피아인 캐스퍼가 영화 속 최대 권력자로 보이는 리오에게 허락 혹은 도움을 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부>의 오프닝을 오마주하는 관계성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대부>의 오프닝에서 의도적으로 많은 것을 걷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부>에서는 바깥의 결혼식 장면과 실내의 칠흑같은 어둠이 대조를 이루며, 돈 콜레오네의 위엄과 신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밀러스 크로싱>의 오프닝은 그런 극단적인 명암을 거부하고 플랫한 조명으로 인물들을 소개한다. 또한 위엄 있는 대부는 없고 어딘가 하나 모자란 보스 리오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이 오프닝만으로도 코엔 형제는 이번엔 갱스터 장르를 따르되, 그 틀을 비트는 영화가 될 것임을 선언한다.
“항상 원하는 걸 어렵게 얻는군요? 달라면 그냥 줄 텐데” 이 영화의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베나가 주인공 톰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마치 갱스터 영화의 모든 남자 캐릭터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원하는 걸 말하지 않고 감추며 서로 헤치고 마침내 원하는 것은 커녕 목숨도 부지 못하는 것이 태반인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들.
<밀러스 크로싱>의 주인공 톰. 이런 장르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굉장히 냉정한 캐릭터이며 지략가이다. 사실 톰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 베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끝내 그녀를 쟁취하려 하지 않고, 권력욕이 있나 싶지만 그렇지도 않다. 죽을 위기에서도 한 번도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며 냉정하게 상황을 헤쳐나간다. 어떤 욕망이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계획했거나 운이 따랐거나 끝내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딱히 무력이 강한 것도 아닌데 수차례 배신을 당하면서도 운도 좋아서 어쩌다 보니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톰. 톰의 생존은 결국은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차별점을 두고 있다.
보스 리오는 경쟁 마피아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집을 다 태우면서도 카리스마있는 총격전을 보여주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한다. 어디 하나 부족한 줄 알았는데 배짱있는 캐릭터임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일반적인 갱스터 무비에서 보스는 직접 움직이지 않으며 결국은 습격을 당하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는데 리오는 오로지 본인의 힘으로 본인의 목숨을 지켜낸다. 또한 리오는 자신의 여자를 탐했던 톰을 잔인하게 죽이는 대신 두들겨 패주기만 하고, 엔딩에는 그런 그를 다시 복직시키려고 하는데 이 모습도 장르를 비트는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밀러스 크로싱"은 폭력과 살인이 이뤄지는 숲속을 칭하는 말이다. 누군가를 살려주기도 하고, 때론 죽이기도 하고, 거짓말과 배신이 난무하는 그런 공간. 어쩌면 이 장르를 응축한 그런 공간이다. 밀러스 크로싱으로 톰의 모자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톰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인 모자가 밀러스 크로싱을 날아간다는 것은 이 장르 혹은 범죄 속에서 자존심도 잃고 도덕적 가치도 잃어버리는 한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는 밀러스 크로싱에서 버니를 묻으며 끝이 난다. 톰과 리오는 다시 대면하지만 톰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리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혼자 남은 톰.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은 사람이겠지만 과연 그게 그에게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자체가 결국 또 한편의 부조리극이다. 어쩌면 코엔 형제가 좋아하는 욕망을 갖은 인물들이 뒤섞기는 부조리극을 보여주기에 갱스터 장르의 틀이 적격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