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톤 핑크

Barton Fink, 1992

by 유브로

코엔 형제의 4번째 작품이자 그들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소문에 따르면 <밀러스 크로싱> 시나리오를 쓰던 중 겪은 창작의 고통이 <바톤 핑크>의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소문이겠지만 이 작품이 20세기 폭스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을 보면 영화 속 바톤 핑크의 입장에 코엔 형제를 얼추 대입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바톤 핑크는 뉴욕에서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연극 작가다. 자연스러운 루트처럼 할리우드로 스카우트되지만 그곳에서 그는 제정신인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한다. 그의 연극은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를 극빈 대접하는 영화사 사장부터 존경하는 선배 소설가 메이휴는 술에 절어있고, 감독이란 작자는 B급 영화니까 대충 하자며 바톤 핑크를 다그친다. 어쨌든 바톤 핑크는 레슬링 영화 시나리오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레슬링을 알지도 못하는 바톤 핑크에게 할리우드는 환영이 아닌 악몽으로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뉴욕에서 유명해진 바톤 핑크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LA에서 처음으로 만난 평범한 사람인 옆방 투숙객 찰스와 가까워지지만 정작 평범한 사람인 찰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의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타인의 고통엔 무관심하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는 가운데도 오로지 자신의 얘기만 떠들고 여기저기 도움을 받고 싶어 어린애처럼 돌아다닌다.


메이 휴의 비서이자 애인 관계인 오드리와 동침을 하게 되는 바톤 핑크.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순간 카메라는 트랙 이동하여 세면대 하수구로 들어가는데, 이때부턴 이 영화가 바톤 핑크의 꿈인지, 현실인지, 어쩌면 환상인지 모호하게 흘러간다. LA에서 기댈 수 있었던 두 명 중 한 명인 오드리는 자신의 옆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고 또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찰스는 가장 평범하지 않은 연쇄살인마였다.


평범하다 믿는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그런 일상을 마주하고서야 드디어 바톤 핑크는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찰스는 처음 바톤 핑크를 만났을 때 바톤 핑크가 작가라는 얘기를 듣자 글 쓴다고 세상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웃는다. 사실 찰스는 글로 세상을 해결할 자격도 없다. 남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밖에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 마냥 묘사가 되니까. 그러나 찰스 본인도 연쇄살인마가 된 이유를 불쌍한 사람들을 현실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두 사람은 세상을 구원한다고 말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착각에 빠진 작가와 연쇄살인마일 뿐이다. 코엔 형제의 빛나는 아이러니 포인트다.


바톤 핑크가 묵고 있는 호텔은 미스터리의 집약체다. 호텔은 바톤 핑크를 단 한순간도 가만두지 않는다. 사막 위에 세워진 LA에서 존재할 리 없는 모기들이 들끓고, 습기로 부푼 벽지는 늘 벗겨져 피처럼 붉은 액체를 드러낸다. 옆방의 투숙객 찰리는 문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온다. 이 호텔은 바톤 핑크에게 잠을 자는 공간보다는 글을 쓰는 공간, 즉 창작의 공간이다. 작가의 창작 공간은 정말 사소한 이유로도 방해받더니 범죄로 점철되며 결국은 불에 활활 타버린다.


<바톤 핑크>는 겉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지만 막상 그 미스터리가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게 설계되어 있다. 우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호텔의 정체를 알 수 없다. 아니, 과연 이 호텔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오드리가 진짜 죽은 것은 맞을까? 아니 오드리는 실존했는가? 그렇다면 찰스는? 알면 알수록 오히려 미스터리에 갇히게 되는 그런 설계다. 할리우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가져왔지만 전혀 미스터리를 풀 생각이 없고 오히려 미스터리 안에 갇히게 설계된 이야기는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창작자, 예술가의 죽음을 비판하는 코엔형제의 또 다른 장르 비틀기다.


바톤 핑크가 서랍에서 성경을 꺼내 읽는 장면이 있다. 성경엔 “나는 꿈을 기억하지 못하니, 네가 나를 위해 꿈을 말하고 해몽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꿈과 영화, 그리고 현실, 어디가 진짜이고 어디가 가짜인가. 아니 사실 그런 것들을 구분할 의미가 있나. 꿈은 자면서 보는 영화이며, 현실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또 하나의 영화이며, 현실은 곧 꿈으로 재현되는 것. 결국 그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어쨌든 그렇게 완성한 바톤 핑크의 시나리오는 자신을 극빈 대접하던 영화사 사장에게 말 그대로 짓밟힌다. 바톤 핑크는 그럼에도 영화사와의 한 계약 때문에 LA를 떠날 수는 없다. 마치 노예계약처럼 붙잡혀 버리는 신세다. 바톤 핑크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바닷가다. 사실 결국 허탈한 마음에 호텔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다는 축축했던 호텔의 연장선이며 늘 바라보던 책상 위 사진은 현실 속 풍경처럼 그의 눈앞에 펼쳐진다. 바톤 핑크는 끝내 꿈과 현실, 환영과 영화, 그 모호한 경계 속을 끝없이 헤매고 있는 것이다.


<밀러스 크로싱>에서 나사 빠진 버니 역할을 했던 존 터투로는 바톤 핑크 역할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유약한 이미지와 흔들리는 눈빛이 길을 헤매는 작가 역할에 딱이었다.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찰리를 연기한 존 굿맨이 압권이다. 시종 땀을 질질 흘리다가 화끈한 총격전까지 보여주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밀러스 크로싱>에서 에디의 총격전도 그렇고 <바톤 핑크>의 존 굿맨의 복도 샷건 신을 보면 코엔 형제는 액션 영화를 만들었어도 참 잘 만들었을 것 같다. 짧지만 뇌리에 박히는 장면을 만들어낼 줄 안다.


나 역시 시나리오가 막히고 무엇을 쓸지 모르겠는 마음에 코엔 형제 영화를 일단 정주행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에 봤던 것이랑은 영화가 또 다르게 보인다. 사실 무엇을 어떻게 쓸지를 알려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내가 딛고 있는 현실과 영화, 그리고 내가 그리는 환상과 꿈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창작자의 고통에서 시작해 그의 머리를 돌아다니듯 영화와 꿈,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톤 핑크>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대해 말하는 영화 중 가장 영화적이다. 영화 너머 그 무언가로까지 사유가 향하게 만드는 정말 훌륭한 영화다. "인간은 결국 아이러니 그 자체" 코엔 형제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명제를 모호하지만 오히려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코엔 형제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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