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서커 대리인

The Hudsucker Proxy, 1994

by 유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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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서커 대리인>은 1958년 눈 내리는 연말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허드서커 산업의 사장 허드서커는 끝도 모르고 발전하는 회사를 뒤로한 채 44층에서 투신자살하고 경영진은 주가를 조작하기 위해 무능한 인물을 사장으로 앉히는 음모를 꾸민다. 그렇게 말단 직원 노빌이 회사 사장 자리에 오른다. 그저 꼭두각시 역할만 해도 되는 걸 노빌은 세상 열정적인 성격이다. 그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언론사 기자 에이미가 비서로 위장 취업하고 빌은 에이미의 응원으로 늘 본인이 행운으로 믿고 있던 원을 이용해 훌라후프를 발명해낸다. 훌라후프는 대박이 나고,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경영진들은 당황한다.


<허드서커 대리인>은 다양한 의도가 보이는 영화다. 상승과 추락으로 화려한 성공신화를 풍자하며,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함께 공장, 노동자의 풍경을 과장된 양식으로 재현한다. 영화 자체가 대사량, 슬랩스틱으로 쉴 틈 없이 잽을 날리며 대놓고 웃기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곳에서 주체적인 기자로 등장하는 에이미는 여성 서사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훌라후프로 대박이 나는 노빌, 딱 여기까지가 코엔 형제가 만든 부분이라고 믿고 싶다. 영화에서 가장 좋은 시퀀스인 초반 허드서커 사장의 투신 시퀀스나, 세계 최초로 훌라후프를 돌리는 어린이의 시퀀스가 다 이 초중반부에 등장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추락과 상승 서사를 통해 훌라후프로 성공한 노빌의 몰락과 재기를 그려내는데, 이 부분은 극적인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언더커버 서사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의도는 없어지고, 쉴 틈 없이 날리는 코미디 잽은 헛방이 더 많은 편이다. 노빌은 권력과 성공을 거머쥔 뒤 자신이 비판하던 인물로 변해가고, 결국 사랑을 통해 자각하는 인물로 재탄생한다. 전형적인 스크루볼 코미디의 전개가 흥미를 떨어트리며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보였던 에이미도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 캐릭터로 전락한다. 워낙 만화적인 영화라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후반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신의 개입까지 등장하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마 디즈니 만화를 실사로 옮기는, 동화 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 거기에 사회적 풍자를 넣어 약간 성인 버전으로? 그 와중에도 장르를 비틀려고 멍청한 남자 주인공과 능동적 여성 주인공이라는 대비를 넣은 시도가 코엔 형제답다. 실사 영화에서 보기 드문 빠른 리듬감, 웅장한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미술은 정말로 만화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일종의 교훈극이기 때문에 신의 개입도 이해는 간다. 무엇보다 1950년대의 건물과 공장 내부가 섬세하게 재현하였고 고층 건물과 거대한 세트들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스케일이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 로저 디킨스의 묵직한 카메라워크 역시 이러한 시각적 과장을 한층 강화한다.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폴 뉴먼의 건장하고 냉철한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바톤 핑크>라는 걸작 이후 나온 작품이라 심심하고 의아하긴 하다. 영화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건축적인 가치, 경영, 산업 구조의 묘사 때문에 아직도 여러 분야에서 언급이 되는 영화가 된 것 같다. 오히려 영화인들보단 타 분야에서 더 시간을 견디는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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