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Lebowski, 1998
<위대한 레보스키>의 주인공 레보스키는 본명을 감춘 채 듀드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DUDE, 그놈, 그 녀석 그런 뜻이다. 평화로운 듀드의 삶. 그러나 어느 날,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레보스키 때문에 괴한들이 들이닥쳐 그의 소중한 러그에 오줌을 싸버린다. 이 러그는 듀드가 너무나도 아끼는, 집을 환하게 만드는 그런 러그였다. 듀드의 러그를 보상받기 위한 여정, 그 여정은 코엔 형제의 영화들처럼 꼬이기 시작한다.
철저한 캐릭터 무비다. 일단 듀드, 월터, 도니 이 삼인방이 볼링장에 앉아있는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강렬하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이자 90년대 미국 남성들의 초상이다. 듀드는 운동권 세대로 과거엔 세상을 바꿔보려 했지만 현재는 자유롭게 혹은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좋게 말하면 한량, 나쁘게 말하면 백수다. 월터는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훈장으로 갖고 사는 다혈질 남자다. 그 다혈질이 정말 심해서 딱 2마디 정도면 바로 화를 낸다. 월터는 사실상 이 영화에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듀드는 월터의 다혈질 행동을 말리면서도 웬만한 선택은 다 월터에게 물어보고 월터에 의해서 행동한다.
듀드는 주체성이 떨어지거나 그 주체성을 포기했고 월터는 주체성에 집착하며 매번 실수를 일삼는다. 중간이 없는 친구 사이다. 친구의 유골함을 살 돈이 없어 커피 캔에 유골을 담아 바닷가에 뿌려주려 하지만 그 유골마저 바람 때문에 뒤집어쓰는 멍청이들이다. 그럼에도 볼링이나 치러 가자며 다시 볼링장으로 가는 두 사람. 그저 볼링 리그를 준비하며 볼링장에서 맥주나 마시며 볼링장에 깡패로 군림하고 있을 뿐이다.
듀드가 양탄자를 보상받기 위에 찾아간 동명이인의 레보스키는 갑부인 것 같지만, 사실은 딸에게 용돈이나 받는 돈도 없고 걷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다. 젊은 아내를 두고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위대한 레보스키>는 추락한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레보스키의 아내를 찾으려고 온갖 남자들이 듀드를 찾아오는데, 어디 하나 제대로 된 남자들이 없다. 무시무시한 줄 알았던 록 밴드 스타일의 삼인조는 웬 족제비 같은 작은 동물을 데려와 듀드를 겁주고, 결국은 월터에게 3대1로 개박살 난다. 그들의 정체는 패러디 밴드이며 허세만 가득한 애송이들이다. 또 다른 인물은 으리으리한 주택에 거주하지만 포르노 영화나 제작하는 3류 사업가다. 하나같이 사업과 예술 어디에서도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는 3류들이다.
영화 속 여성들은 반대로 주체적이다. 레보스키의 딸 모드는 자신의 임신을 위해 듀드를 이용하지만, 뚜렷한 목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오히려 듀드는 그녀의 계획 속에서 아이를 낳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레보스키의 아내 버니 역시 스스로를 객관화할 줄 알며 남성들 위에 군림하며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다.
듀드의 삶은 한심하지만 또 애잔하고 그럼에도 즐거워 보인다. 듀드는 영화에서 2번에 꿈을 꾸는데, 이 꿈은 그럼에도 아직 듀드의 마음속에 소년성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 그대로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듀드는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들 중에 그나마 제일 정상에 가깝다. 모든 실수는 월터가 시키는 대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듀드는 언제나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 그의 단점은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것뿐이다. 여기저기 두들겨 맞고 욕먹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복수를 하려고 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영화의 엔딩, 볼링장에서 카우보이 아저씨가 듀드에게 말을 걸어온다. 카우보이야말로 미국 남성성의 상징이다. 카우보이는 듀드를 동정하기보단 응원한다. "그럼에도 듀드는 계속됩니다" 카우보이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듀드는 본인의 레보스키라는 이름 대신 듀드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큰 욕심도 없고 그저 볼링을 치며 위스키 한 잔에 특별히 불만족 없이 살아간다. 부조리한 삶, 추락한 삶 속에서도 그럼에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한심하면서도 애잔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워 보이는 듀드의 삶. 코엔 형제는 추락한 남성성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인간의 유연함을 그런 듀드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다. <위대한 레보스키>는 실패한 남성들의 삶에 대한 코엔 형제만의 소소한 찬사다.
한국에선 아니지만 외국에선 컬트적 인기를 얻은 영화다. 듀드의 라이프스타일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유행한 소확행과 맞닿아 있다. 작고 사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세상의 흐름에 굳이 저항하지 않는 삶. 듀드의 패션도 참 인상 깊다. 긴 머리, 카디건, 반바지 등 대충 걸친 듯 보이지만 그 느슨한 태도 속에는 듀드라는 캐릭터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듀드를 포함한 모든 캐릭터들이 개성이 너무 강해 오히려 듀드가 가려지는 편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찐 주인공은 월터 역의 존 굿맨이다. 내 친구가 아니라면 상대도 하기 싫은 그런 아저씨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한다. 단연 그의 커리어 최고작이다. 줄리안 무어, 스티브 부세미 등 조단역들마저 개성이 뚜렷하다.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예술과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클래식이자 진정한 컬트 무비다. 정말 개성만큼은 어디에 둬도 뒤지지 않을 코엔 형제가 만들어 온 코미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