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고였을 뿐

It Was Just an Accident, 2025

by 유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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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도로를 달리는 차 안, 앞좌석에 엄마와 아빠, 뒷좌석에 딸. 영화는 3명의 가족으로 시작한다. 차로 강아지를 치는 가족들. 딸은 아빠에게 아빠가 강아지를 죽였다고 하지만 아빠는 어쩔 수 없었다며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자기 잘못은 없다고 억울해한다. 억울해하는 이 남자는 이 밤이 지나면 그저 사고였을 뿐인 하루를 보내게 된다.


정비공 바하디는 낯선 남자의 의족 소리를 듣고 과거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하던 남자의 발소리를 떠올린다. 억울하게 감옥에서 고문과 온갖 핍박을 받은 바하디는 그럼에도 언제나 눈을 가리고 있었기에 그 남자의 정체를 확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억에만 의존한 채 충동적으로 남자를 납치하는 바하디. 바하디는 남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가고 점점 사람 수는 늘어난다. 아이러니다. 모두에게 여전히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다.


영화는 끝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그 남자가 정말 그 남자인지 그리고 바하디의 복수가 정의인가 충동인가를 쉽게 판단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복수는 점점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과 분노로 확장된다.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인간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복수할 수 있음에도 그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는 행동 때문에 삶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또 삶을 살아내며 복수 대신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삶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그는 감옥에도 갇혔고 출국이 금지되었으며 영화를 찍지 말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에 대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체제도 예술혼은 막을 수 없다" 마침내 감옥에서 출소하고 출국 금지도 해제되고 영화도 완성했다. 그는 그리고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손에 쥐었다.


한편의 복수극이자 도덕적, 체제적인 통찰력을 지닌 작품이지만 극적 긴장감이 훌륭한 장르 영화이며 무엇보다 굉장히 뚜렷한 작품이다. 복수의 방향이 뚜렷하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도 뚜렷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며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림도 뚜렷하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분노와 감정들이 무엇일지 관객들이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침착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카메라는 무관심한 것 같지만 어디에 집중해할지를 아는 듯 확실하게 보여줄 것들을 담아낸다. 러닝타임 내내 뜨겁고 뚜렷하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감독의 뇌엔 어디까지 각인되어 있을까. 혹은 감독이 영향을 받은 피해자들의 삶엔 어디까지 각인되어 있을까.


올해 최고의 엔딩이다. 영화의 엔딩에선 모든 관객도 순간 숨을 죽이게 될 것이다. 눈을 막았기에 각인된 청각의 기억, 청각의 영화적 활용의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 반대로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또 반대로 듣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대사를 듣게 된다. 눈을 가리면 귀가 열린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 선명해진다.


감독의 삶, 체제에 대한 비판을 걷어내더라도 그 자체로 훌륭한 장르 영화다. 그러나 어찌 그걸 걷어낼 수 있을까. 그것이 자파르 파나히의 정체성이자 예술혼을 막을 수 없었던 그 이유이다. 체제의 탄압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한 감독의 생존 기록이자 인간이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윤리에 대한 영화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단단하고 강렬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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