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합격

by 유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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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된장찌개랑 이른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커피를 타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편집 일을 하며 선배와 통화했고

그냥 지리멸렬한 이야기들을 했다.

하 어떻게 살아야지 하고 고민하던 그때,

어떤 문자가 왔다.


기다리던 공모전 1차에 합격했다.

정말 너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 스스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자괴감이나 열등감에 시달리던 요즘,

나에게 이런 날이 또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바로 측근들 그리고 가족들에게 알렸고

모두가 너무 놀라서 나를 축하해 줬다.

친한 감독님은 시나리오도 읽어봤는데

충분히 좋은 시나리오라고 말해줬고

여자친구는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나는 친한 감독님이랑 통화하면서

정말 잘 준비해서 최종에서도 꼭 붙자고 말했다.


나는 혼자 앉아있다가 그냥 눈물이 흘렀다.

정말 이렇게 눈물이 흐른 적은 처음이다.

내 나이가 이제 34살,

주변에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한심한 말이지만 나는 잘나가고 싶었다.

정말 감독이 되고 싶었다.

작년 말부터 늦기 전에

그 꿈을 꼭 이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어떤 누구들처럼 그렇게 뜨겁진 않았기에

그냥 반신반의하면서 이때가 아니면

시나리오를 못 쓸 거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올해 몇 개월 시나리오를 썼던 것이다.


아직 1차밖에 아니지만

어쨌든 세상이 정말 오랜만에 나를 인정해 줬다.

나는 나를 그렇게 존중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고생했고 잘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그래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도 재능 있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확실한 인정을 받은 기분이다.


어떻게든 최종 합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끝은 아니지만

내가 그토록 꾸는 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들이다.


너무 들뜨지 말자는 마음에 편집 일을 다 하고

어머니가 사 온 핫도그도 먹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왔다.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이랑 식사를 하고

저녁엔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영화에 대한 내 여정.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사실 그건 피한 것이다.

패배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서 피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나는 점점 어른이 됐고

내가 너무 부족하고 보잘것없다고 느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느낄 때

오히려 나는 다시금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잘났다고 날아다니던 사람들도 지나갔고

살아남아서 결국 영화를 찍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가족이 될 것이고

여자친구에게 떳떳한 남자친구가 될 것이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지가 될 것이고

나를 별 볼일 없게 생각한 모두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반드시 해내서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나란 사람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나란 사람의 영화도 있다고.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해야만 한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



(2025년 4월 3일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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