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탈락

by 유브로


원하던 공모전에 선정되어

반년 정도 내 시나리오를 다듬는 시간을 가졌다.

선정된 사람들 사이에서

최종 합격자를 또 추려내는데

나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공모전에 선정되고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합격 자체가 나에겐 가장 큰일이었다.

나에게 큰 응원이었고 모든 가능성의 시작이 되었다.


시나리오에만 매진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위해 한국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고

내 시나리오를 위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시나리오를 피칭하기도 했다.


최종 합격을 하면 또 위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종 합격을 하지 못하면서

나는 합격하기 전 상황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금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은 삶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미 여기 선정된 것 자체가 나에겐 놀라운 성과였다.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탈락하니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내 삶에서 이토록 나를 노력하게 둔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쟁취하고 싶었고

뭔가 누구에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순간 떠올려보니

나는 나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도 지나고

재능이 없으니 그만둬야겠다는 시간도 지났고

이것밖에 할 수 없느니 해보자고 하는 시간이 왔고

열심히 하면 나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또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니까.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는 소식,

그러니까 탈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은 그전의 삶과 많이 떨어져 지냈다.

열심히 시나리오 쓰던 공간을 찾지 않고

노트북을 켜면 항상 열어두던 파일도 열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노트북도 열어보지 않았다.

영화도 보지 않고 드라마도 보지 않았다.

심지어 루틴처럼 하던 운동도 잠시 쉬었다.


루틴을 만들고 노력했던 그 시간이

나에게 보답을 주진 않는다고

스스로 조금 비관했었나 보다.


정말 최선을 다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솔직히 스스로에 대한 후회는 없다.

나는 이보다 더 잘해낼 수는 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것이다.

다만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약간 막막한 생각도 드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러나 이제 좀 마음이 평온해지고

객관적으로 나의 작품에 대한 단점을 보려 하고

어쩌면 피하고 묻어두려 했던 부분마저도

다시 꺼내서 파헤치고 해결해 보려고 한다.


다시 또 다른 루틴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한번 루틴이 잡혔었다 보니

다시 루틴을 찾는 것이 어렵진 않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 경험이 되어

다시 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주나 보다.


그냥 넋두리이다.

사실 너무 행복했다.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경쟁하고

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순간들을 상상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되묻던 그 시간들이

후회가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해서 그 시간을 끝내기가 너무너무 아쉽다.


여행을 갔을 때 내 동기들은

내가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도해 줬었다.

내 여자친구는 매일 같이 내가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

나에게 귀에 딱지가 돋도록 말해주었다.

엄마와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결과가 나오고 내 여자친구는

농담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겨우 이 공모전의

최종 합격을 빌어준 것은 아닐 거라고 말한다.

내 작품이 영화가 되어

세상에 공개되기를 기도해줬을 거라고.

그녀의 농담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을 먹는다.

그 주변 사람들의 진심들이 나를 또 일으켜 세운다.


정작 나마저도 그 행복했던 시간 속에서

이 공모전의 최종 합격을 바란 것이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순간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이 탈락에 좌절하고 포기하기엔

나의 간절함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잠깐이지만 맛본 그 행복의 순간이

나를 다시 또 움직이게 만든다.


당신들에게 언젠가 내 영화다 닿길 바란다.

자기소개서에 썼던 문장인데,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된 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나도 체험해 보고 싶다.

이젠 그 마음이 정말 더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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