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2025.08.16

by 유브로


목포영화제에 갈 일이 생겼다.

영화를 상영하게 되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스케줄 상 같이 갈 수 있는 스텝들이 없어서

당일치기로 가려한 건데 목포도 바다가 있으니까

로케이션 헌팅 겸 1박을 하고 오기로 했다.


혼자 이렇게 타지에 와서 1박을 한 일이 있었나.

혼자 돌아다니고 이런 걸 잘 못하는 편인데

무슨 바람인지 그냥 이번엔 그러고 싶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목포로 간다.

목포는 20대 때 내일로 여행에서 잠시 들렸었다.

큰 기억은 없고 갈치조림을 먹었던 것 정도.


잘 몰랐는데 연휴였다.

목포역에 내렸는데 사람이 엄청 많아서 신기했다.

가고 싶었던 역 근처 중국집엔 웨이팅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봉마켓이라는 곳에서 봉화면을 먹었다.

오히려 손님이 없었고 1인 식사가 편한 곳이었다.

고기로 국물을 낸 불 맛나는 국수였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라서 잘 먹었다.

나는 안 먹었지만 밥도 말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혼자 식사해야 한다면 추천할 식당이었다.


혼자 묵을 숙소라서 호텔까지는 잡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모텔인 호텔야자를 숙소로 잡았다.

근데 너무 깨끗했고 시설도 깔끔해서 놀랐다.

물론 모텔이라서 내부 시설은 비교가 안되지만

객실 컨디션만 생각한다면 속초 씨크루즈랑 또이또이.

약식으로 조식도 있고 카페테리아도 잘 되어있다.

호텔야자는 어느 지역을 가도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영화 상영 전에 잠시 시간이 남아서

투썸에서 시간을 보냈다.

목포에서 보낸 시간 중 오히려 젤 좋은 시간이다.

시간 때우러 뭔가 강제적으로 보내게 되는 여유인데

강제적으로 머리와 몸을 쉬게 되니까 좋았던 것 같다.

타지에서 보내는 혼자의 시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영화 상영은 정말 소박하게 끝냈다.

GV 진행이 너무 서툴러서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이게 내 단편의 마지막 상영일 것 같아서

좋은 질문이 있으면 대답하려고

준비한 말도 있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그런 기분이었다.


로케이션 헌팅의 목적도 있었기에 바닷가로 향했다.

근데 정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핫플이었다.

내일로 여행 때 잠깐 들렀던 곳이라 몰랐는데

목포가 정말 놀 거리가 많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평화광장은 축제도 하고 있어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로케이션으론 어울리지 않아 그냥 좀 걷게 됐다.


걷다 보니 우연히 갓바위를 발견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갑자기 파도처럼 몰려왔다.

내일로 여행 때 잠깐 들려서

갈치조림만 먹은 게 아니라 갓바위를 왔었다.

어떻게 그 기억이 이렇게 다 지워졌을 수가 있지.

걸으면서도 또렷하지 않고 아른거리는 기억들.

기억력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 나인데

그런 내가 이렇게 기억을 못 하다니.

근데 온 것은 확실하다.

강원도 바다랑은 다른 분위기의 전라도 바닷가.

가족 여행객이 많이 있긴 하지만 너무 붐비진 않았다.

바다 위로 놓여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저녁이어도 더워서 땀이 줄줄 났지만

바다 냄새를 맡고 걷는 것이 참 좋았다.


아마 목포로 촬영을 하러 오진 않을 것 같다.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지만

역시 내 시나리오는 강원도 바닷가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고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다.

영화와 별개로 지역마다 다른

바닷가의 향취를 느끼는 것이 좋다.

목포 말고 다른 지역도 이번 여름 가볼 것인데

지역마다 다른 바다의 분위기를

느끼게 될 경험이 기대된다.


도저히 혼자 저녁을 먹을 식당이 보이질 않았다.

약간 술 먹는 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숙소로 와서 곱창을 시켜서 술이랑 간단히 먹었다.

다음날 아침 7시에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스케줄이어서 일찍 누워서 잠을 청했다.


영화제에서 받은 굿즈.

굿즈를 준다고 해서

티셔츠나 가방일 줄 알았는데 그릇이었다.

색다른 굿즈고 목포영화제를 기억할 수 있는

굿즈를 간직하게 돼서 좋다.

내 영화를 틀어주는 영화제들에는

늘 감사함을 갖고 있다.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건 늘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 기회로 타지도 왔다 갔다 하게 되고

어쩌면 학생 때 늘 꿈꾸던 그런 경험들이다.


다음날 오전 일찍 일어나서

KTX 프리미엄 좌석을 타고 서울로 왔다.

프리미엄이라 앞좌석과의 거리가 멀고 편하긴 했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을 마주하는 신기한 경험.

내가 다 기억하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자만이다.

혹시 이렇게 또 새까맣게 잊어버린 기억들이 있을까.

중요하지 않아서 잊어버린 걸까.

아님 많은 기억들 때문에 지워진걸까.


혼자 타지를 간 거의 최초의 경험이었다.

누굴 만나러 갔다가 기다리는 것을 제외하고

숙박까지 혼자 한 것은 정말 처음인 것 같은데

혼자 있는 짧은 시간들 속에서 갖게 되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것들이 좋은 것 같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혼자 여행을 계획할 것 같진 않다.

역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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