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돈은 깡패다. -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다.
<챕터 2. 수많은 생각보다 신용카드 한 장이 중요했다.>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왜 사람은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덜 아플까. 그 생각들에는
끝이 없었고, 나는 그 끝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사려던 어느 날,
내 생각은 정지가 됐다. 계산대 앞에서, 체크카드에 든
잔고가 700원이 모자랐다.
그 순간 깨달았다. 수많은 생각보다 중요한 건 신용카드 한 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계산대 앞에 서면 나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결제가 가능한 인간’인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사회는 나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를 벌고 있는지를 말이다.
나는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철학을 배웠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며, 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었다. 나는 이 세상이 궁금했고, 또 한편으로는 괴로웠으며, 악착같이 살아남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매일 아침, 같은 일상을 시작하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건 아직 끝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철학은 애물단지 같이 취급되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냉정한 숫자였다. 월세, 통신비, 공과금 그리고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도구. 바로 ‘신용카드’였다.
나는 생각보다 신용카드를 더 자주 꺼내 들었다.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서. 배가 고프면 철학도 사라졌다. 손이 떨리면 말도 흐려졌다.
카드는 나를 지켜줬다. 최소한 ‘결제 가능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잠시나마 유지하게 해 줬다. 철학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면, 신용카드는 나를 사회 속에 존재하게 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양손에 철학과 신용카드를 하나씩 들고 있는 셈이었다. 한쪽은 생각을, 한쪽은 생존을 의미했다.
어느 날, 신용카드 한도를 초과한 날 밤 나는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까지 버텨야 할까?' 또, ‘나는 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요구하는 것은 많은 생각이 아닌, 결제 가능한
신용카드라는 것이었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억울했고, 분했고, 창피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감정 따윈 계산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철학은 머릿속에, 신용카드는 손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방향을 잡아주고, 카드는 당장 끊어질 밥줄을 이어준다.
누군가는 이렇게 사는 내가 우습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다.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게 나다."
그 한 문장만은 아직, 아무도 나에게서 빼앗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