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돈은 깡패다. -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다.
<챕터 3.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죄처럼 여겨진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건 누가 봐도 맞는 말이다.
헌법에도 그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늘 죄인처럼 살아간다.
은행 창구에서, 병원 접수대에서, 마트 계산대에서.
잔고가 부족하다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의 표정이 변한다.
불쌍하다는 눈빛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그 이상하고 낯선 ‘씁쓸한 미소’가 스며 있는 그 표정.
아마 그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당혹감, 무능함 또는 어이없는 상황 속에 부끄러움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은 뭔가 잘못 살아왔겠지.”
“게으르거나, 무능하거나.”라고 말한다.
이미 자기 자신을 속으로 수없이 두들겨 팼을 텐데
마치 확인사살을 하는 것처럼 말을 던진다.
나는 그 찍어 누르는 표정을 수없이 마주했다.
내가 무언가를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어디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저 ‘없다’는 이유로 이상한 기류가 따라붙었다.
가난은 사정이지만, 사람들은 ‘그 사정’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들 마음대로, 편한 대로 그냥 낙인을 찍어버린다.
가난한 사람은 틀림없이 어딘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나는 그런 시선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뼈저리게 배웠다.
처음엔 억울했고, 창피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더 바르게 살려고 애썼다.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의심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사회는 네가 얼마나 바르게 살았는지를 보지 않는다.
‘무엇을 이뤘는가’, ‘얼마를 벌었는가’만을 본다.
가난은 그냥 사정이 아니라, ‘실패의 증거’처럼 취급된다.
그리고 그 실패는 대물림되고 또, 전염된다.
가난한 사람 곁에 오래 머물면, 나도 가난해질 것 같다는 두려움.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을 피하고, 가난한 사람을 멀리한다.
나는 그 투명인간 취급 속에서도 매일을 버텨야 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면서도,
스스로에게만큼은 ‘나는 죄인은 아니다’라는 걸
반복해서 말해줬다.
어떤 날은 그런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말을 줄였고, 눈을 피했다.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도대체 뭘 잘못했는가.
가난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지금, 나는 가진 게 없을 뿐이다.
가난은 그저 상황이다. 영원하지도 않고, 운명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그걸 죄처럼 다룬다.
언어도 그렇다. ‘무일푼’, ‘백수’, ‘신용불량자’, ‘생활고’
따위의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을 찍어 누른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부끄러움에 대해서.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날들에 대해서.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가난한 누군가가 나의 글을 보고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란다.
“당신 덕분에, 내가 죄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 한마디면, 나는 이 치욕의 기록을 쓴 보람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