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돈이 깡패

파트 1. 돈은 깡패다. -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다.

by 무연

<챕터 4. 현실은 이상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현실은 참 바쁘다.
쉴 틈도 없고, 빈틈도 주지 않는다.
누가 뭘 겪고 있든, 무슨 생각을 하든,
현실은 그냥 제 갈 길을 간다.
멈추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늘 오래 고민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지.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보면,
현실은 이미 나를 훌쩍 지나가버린 뒤였다.

어릴 때는 그게 성숙이라고 믿었다.
충동적이지 않고, 깊게 생각해서 행동하는 건
철학 있는 사람의 자세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생각하는 사람'보다 '빠른 사람'을 더 원했다.
사유보다는 실행, 질문보다는 정답.

나는 자주 뒤처졌고, 가끔은 버려졌다.

현실은 이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내면이 익어가는 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런 질문은 급여명세서에도, 자기소개서에도 없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들은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아무리 치열하게 고민해도,
월세는 연체되고, 휴대폰은 정지된다.

나는 처음엔 그게 너무 억울했다. 왜 나는 이렇게 생각이 많은데,
왜 이렇게 성실하게 고민했는데
현실은 나를 한 번도 기다려주지 않는 걸까?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상은 멈춰 설 수 있어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현실은 시스템이고, 시계고, 납부기한이다.
그건 인간의 속도에 관심이 없다.

나는 늦는 사람이었다.
느리고, 고민이 많고, 질문을 먼저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주 지고, 자주 넘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 덕분에 나는 아직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빠르고, 현실은 차갑고, 경쟁은 가혹하다.
그 속에서 철학은 무기라기보단 자주 짐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로 했다.

현실은 이상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게 내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남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늦게 간다.
천천히 걷고, 자주 멈춰 서고, 오래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렇게 살면 뒤처진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생각하면서 뒤처지는 인간이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앞서가는 인간보단, 훨씬 낫다고 믿으니까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세상은 돈이 깡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