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라, 한 가장의 새벽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기억의 증인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새벽은, 언제나 신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른 시간 현관문 틈으로 배달된 교차로 신문을 밥상 위에 넓게 펼쳐놓고, 말없이 그 위를 들여다보곤 하셨습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활자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 아버지의 눈은 조용하고 진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서랍 속에서 꺼내든 그 빨간 펜으로 마음에 드는 곳에 동그라미를 치셨습니다. '구인'이라는 네모난 칸 안에 그려지던 그 동그라미들은, 어린 제가 보기엔 그저 붉은색 낙서 같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의 내일을 위한 고요한 약속이었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소리 없는 다짐이었습니다.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신중하게 수화기를 들던 아버지의 넓은 등. 그 시절의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이렇듯 종이의 감촉과 잉크 냄새, 그리고 희망을 담아 눌러쓴 동그라미의 무게와 함께 기억됩니다.
요즘은 참 세상이 달라졌더군요. 손에 잉크를 묻혀가며 신문을 넘기는 대신,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그날의 소식을 그대로 화면에 불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는 대신, ‘저장하기’나 ‘스크랩’ 버튼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처음에는 그 편리함이 조금 낯설고 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돋보기 너머로 보이던 진지한 눈빛, 신문지 넘기는 소리, 희미한 잉크 냄새 같은 것들이 사라진 자리.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온기는 여전하다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화면 속에 펼쳐진 '울산 교차로 신문 그대로보기'는, 여전히 누군가의 내일을 위한 약속들로 빼곡합니다. 그 시절 아버지가 치던 동그라미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 희망이 되어 이 디지털 지면 위를 빼곡히 채우고 있을 겁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요즘의 방식들은 어떤 이야기와 온기를 품고 있는지 찾아본 기록들을 아래에 조용히 남겨둡니다. 낡은 펜촉에 담겼던 간절함이, 지금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울산 교차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들]
울산 교차로 신문 그대로보기: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의 감성과 함께 그날의 소식과 구인·구직 정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울산 교차로 구인·구직 바로가기: 빼곡한 동그라미들의 목적지였을, 새로운 시작을 찾는 이야기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