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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스트 레지나 Aug 28. 2024

손녀이야기, 생후 31개월의 언어 사회성 발달

나는 생후 31개월된 손녀를 둔 할머니다.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이다. 나의 2세에 이어 3세가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생물학적으로 따지지 않아도 그 일체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내 자식 키울 땐  어떻게 키웠는지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이지만,  그 자식이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그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아기에서 아이로 어린이로 성장해 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삶의 또 다른 낙이다. 



오늘 아침에 가족 단톡방에 딸이 올린 얘기다.


날이 제법 선선하당

아침 저녁으로 ~~!!

아침 등원 길에 

태리한테 가을이 왔나보다~했더니

아직 아니야 했어ㅋㅋ

왜 아직 가을이 아닌건지 맞춰봐유 ㅋㅋ


매미 소리가 들려서?

ㅋㅋㅋ땡

도토리가 없어.

엥?

도토리가 가을에 나온다는 걸 아는구나 ㅋ

알지 ㅋㅋ 도토리가 없데ㅠ ㅠ

그래서 내가 여긴 도토리나무가 없는거 같은데~?했더니

아쉬워~ 이래ㅠㅋㅋㅋㅋ



지난 주 금요일에 딸의 집에 갔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아침 일찍 가는데, 할머니가 오는 날이면 손녀는 어린이집에 안가고 엄마랑 할머니랑 집에서 놀고, 맛있는거 먹으러 나가고, 그야말로 Cheating Day 치팅데이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토끼처럼 깡총깡총 뛴다. 그리고는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거실이 완전 장남감으로 가득, 이것 저것을 가지고 역할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제법 스토리도 있고, 상황에 맞게 말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어린이집 놀이도 하고 카페놀이도 하고 놀이터 놀이도 한다. 생후 31개월인데 이 정도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다들 자기 아이, 자기 손주가 영재 천재라고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오죽하면 손주 자랑하려면 만원씩 내고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릭요거트 카페에 가서 블루베리 요거트를 먹었다. 요거트위에 토핑으로 올린 블루베리, 그래놀라, 견과류 등을 아주 야무지게 먹는다. 가리는거 없이 잘 먹는다. 20분 정도 가는 길엔 잘 걸어가더니, 올 때는 날씨도 더워지고 하니까 힘든 내색을 한다. "할머니가 안아줄까?" 했더니 딸이 "안돼, 오늘은  어린이집 안갔으니까 운동량 적어서 더 걸어야 돼"하며 만류를 한다. 그래도 터벅터벅 잘 걷는다. 다행히 바람이 솔솔 분다. 중간에 정육점을 들러 고기를 사고, 편의점 들러 손녀가 좋아하는 뽀로로 음료를 샀다. 뽀통령이 왜 뽀통령인지 알겠다. 마켓팅 전략으로 최고다. 


집에 와서 더위를 식힌 후,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쫑알거리는 소리는 최고의 반찬이다. 엄마와 할머니가 대화를 하는데 수시로 대화 속에서 캐치한 단어의 뜻을 묻는다. "편식이 뭐야? "애교가 뭐야?"  "학원이 뭐야?"등등. 아이 앞이라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되겠다 싶다. 영어로 질문을 하면 대답을 우리말로 한다. Where is Daddy? "회사갔어." 쇼핑백에 있는 알파벳을 읽는다. 블루베리를 먹으면서도 영어로 숫자세기를 한다. 


이제 요가할 시간~" 하더니 영상을 튼다. 알파벳 요가, 한글 요가를 제법 잘 따라한다. 동작의 디테일을 살릴 줄 안다. 아직 영상은 하루에 10분 정도, 아예 영상을 안 볼 때가 더 많단다. 요즘엔 스마트폰이 베이비시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엄마들이 일찌감치 아이들을 스마트폰과 영상에 노출시키는데, 그래도 딸은 가능하면 영상 안보여주기 원칙을 지킨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가끔 영상을 볼때면 아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신기한 세상 속으로 빠져든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더 보겠다고 조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할머니 가시면 이제 낮잠시간이야~~~"하니까 애착인형인 토짱이 챙기고 책 한 권들고 침실로 들어간다. 


전철을 탔는데  딸에게서 톡이 온다. 낮잠을 자러 들어가서 "할머니 금방가서 아쉬워~"를 세번 이나 얘기하다가 잠들었다고. 생후 31개월짜리 아이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아쉬움이란 단어가 정말 어떤 느낌인지 긍금해진다. 문득 우리 딸이 클땐 언제부터 말을 시작했지?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었지? 책을 많이 읽어주다 보니 혼자서 한글을 저절로 깨우쳤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생후 31개월 아이의 언어 사회성 발달 단계를 검색해봤다. 


1. 부정어와 비교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2.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다.

3. 연결된 상황을 두 문장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 

4. 어른이 시키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할 수 있다.

5.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 있다.

6. 놀이를 하다가 친구에게 요청할 수 있다.


우리 손녀만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다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시기구나 ㅋㅋ하마터면 착가할 뻔 ㅋㅋ


생후 31개월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적 사회적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주어지는 것을 스폰지처럼 모두 흡수할 수 있다. 한글 먼저, 영어 나중이 아니라 동시에 다중 언어습득이 가능한 시기다. 어떤 환경, 어떤 교육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오는 길에 인터넷으로 영어동화책 몇 권을 주문하여 배송시켰다.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이해하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쫑알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책을 많이 읽어 주다 보니 지금 아이의 머리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책 속의 세상이 그대로 들어있다.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책읽는 습관을 들여주는 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젊은 엄마 아빠들이 깨닫고 실천했으면 좋겠다. 가을이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고 있어야 하는데, 아직 도토리가 없으니 가을이 아니라는 태리의 생각!!! 

지난 해 여름


생긴 모습부터 엄마랑 똑같더니 

하는 짓도 엄마랑 똑 닮았다.

1분이라도 더 늦게 스마트폰이나 영상에 노출시키기 위해서 

온전히 육아를 위해 애쓰는 딸이

 이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다. 

요즘들어 자주 하는 말이 생겼다.

 우리 태리가 살아갈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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