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수의 음악캠프 손석희 편을 듣고
오후 6시가 되면 , mbc라디오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음악이 있다. 오늘 아침엔 유튜브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배철수가 휴가를 가게 되면 종종 다른 방송인들이 1일 Dj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마침 손석희가 Dj다. 청춘의 노래들이란 타이틀에 맞춰 손석희의 청춘 음악 스토리가 나온다. 그도 신입 시절에 mbc 젊음의 음악캠프 Dj를 했었던 추억부터 그의 미국생활 이야기까지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만나는 음악얘기는 곧 그의 삶이고 그의 문화가 된다. 그가 진행했던 시선집중, 100분 토론, Jtbc 뉴스룸에서 엔딩음악으로 사용하는 The frozen man에도 그의 철학이 들어있다.
문득, 내 청춘의 노래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지?를 생각해봤더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약혼식 때의 노래였다. 어언 40년 전의 일이다. 1985년 6월,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수도원에서 수사님과 수녀님을 모셔놓고 남편과 나는 약혼식을 했다. 부모님들없이 친구들이 주선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지금의 남편이 그해 10월이면 국제카톨릭 NGO단체에서 일하기 위해 홍콩으로 출국하기로 되어있어서, 친구들이 서둘러 약혼식을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 노래를 부를 기회가 주어졌고,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는 바로 송창식의 '내 나라 내 겨레'였다.
노래를 시키길래 생각나는 것이 그 노래여서 그걸 불렀더니, 나중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약혼식에서 '내 나라 내 겨레'같은 노래 부르는 여자는 너 밖에 없을거라고 ㅋㅋ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듣는 것도 좋아한다. 장르도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클래식부터 가요, 국악, 팝송, 동요에 이르기까지 모든 노래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도 TV를 통해 나오는 모든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을 빠뜨리지 않고 본다.
나는 어릴 때 동네 가수였다. 여섯 살 때 쯤으로 기억된다. 저녁식사 후에, 동네 평상에 어른들이 모여앉아서 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과자를 잔뜩 쌓아놓는다. 신청곡을 받고 어린 꼬마가수의 리사이틀이 벌어진다. 노들강변, 창부타령부터 대머리총각, 그 사람 바보야 등등 쬐그만 아이가 민요부터 유행가에 이르는 다양한 노래들을 춤과 함께 부르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어깨가 들썩 들썩. 그 당시에 우리 집에는 전축이 있었다. 아버지는 민요를 좋아했고, 엄마는 유행가를 좋아했다. 나는 둘다 들었으니 둘 다 잘할 수 밖에. 어디 노래 가사 뜻을 알고 불렀겠나. 그저 한 번 들으면 노래를 금방 따라하는 절대음감이 있었으니 그 당시 레퍼토리가 엄마 말에 의하면 100곡이 넘었다고 한다. 꼬마 이미자라는 타이틀이 생겼단다.
며칠 전에 시내버스를 탔는데, '오~늘이 가기 전에 ~떠 나갈 당신이여~ 이제는 영영가는 아쉬운 당신이여~" 1970년대 하이틴 가수 전영록의 '애심'이란 노래가 흘어나오는게 아닌가? 아니 이 노래는!!! 정말 백만년 만에 들어보는 것 같았다. 소꿉 친구 영이가 기타를 치며 함께 부르곤 했던 그 노래, '애심'!!! 나중에 영이와 그 이야기를 하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중학생 그 시절에 혜은이의 '새벽비'를 좋아했고, 김수희의 '멍에'를 엄청 불러댔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 조덕배의 '꿈에', 그리고 송창식의 '상아의 노래' 해바라기 노래들 등등. 중3 때는 mbc대학가요제에 나온 노래들로 강가의 하얀 백사장을 물들였다. 그렇게 나의 중학시절은 익어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우리나라 가곡을 좋아했다. 지금도 집안 일을 할 때면 가곡을 흥얼거리곤 한다. 동심초, 그리운 금강산, 비목, 고향의 노래, 오라 등등. 이 시절에는 또한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팝송에 빠져버렸다. 빨간색 더블데커 카셋트라디오, 라디오에서 팝송이 나오는 시간이면 한 쪽 데커에 공테이프를 넣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녹음했다. 그리고는 녹음된 노래 가사를 받아적고, 그걸 테이프가 늘어질 때 까지 들으면서 팝송을 익혔다. 학교에서 5교시가 되면 의례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식곤증을 없애기 위해 나한테 노래를 시키곤 했다. Yesterday, The end of the world, Top of the world, Don't forget to remember, Take me home country road, Dancing queen, Over and over, Don't cry for me Argentina 등등. 그 덕분에 나의 팝송 레퍼토리는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대입 학력고사가 끝나고 부터는 지하 음악다방에 열심히 들락거렸다. Dj에게 음악 신청하고 설탕 프림 커피마시며 수다떨고 했던 그 시절...대학 입학 후신입생 시절에는 학교앞 지하다방에가서 죽치고 앉아 그룹 Queen의 노래와 Bob Dylan의 노래를 탐닉했다. Bohemian Rhapsody, Love of my life,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Radio Ga Ga 등등. Bob Dylan의 The Times They are A-Chang도 많이 들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뜻의... 그러다가 사회과학에 눈을 뜨면서 부터는 민중가요에 흠뻑 취했다. 노래는 힘이고 노래는 기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 기억 속에 1980년대 중후반기 대중음악은 거의 자리가 비어있다.
열심히 앞만보며 달렸던 내 30대에는 아쉽게도 음악이 없다. 애써 기억하면 나겠지만 딱히 떠오르는 노래가 없다. 아이들 키우며 일하며 노래들을 틈도 여유도 없이 살아왔던 그 시절이다. 40대부터는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래 맞아, 나는 노래를 좋아했었지, 내가 동네가수였었지...50대가 되어서는 TV를 통해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시대별 선배들의 노래들을 편곡해서 불러주니 그것만 보고 있어도 저절로 추억이 소환된다.
할머니가 되었다. 딸이 손녀에게 불러주는 노래들은 그 옛날 내가 딸에게 불러주었던 동요와 영어 노래 들이다.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커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딸과 손녀가 이 노래를 함께 부른다. 손녀가 하는 말, "엄마 이가 옥수수같아~~~."
음악은 우리 문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우연히 들은 노래 하나가 사람을 생각나게 하고,
우연히 들은 노래 하나가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해준다.
손석희의 청춘 노래들을 들으며 손석희의 삶과 그의 철학을 음미하듯이,
내 청춘의 노래들을 되짚어보며 내 삶과 철학들을 반추해 보게 된다.
내 청춘의 노래들은 그렇게
앞으로도 계속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