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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Aug 26. 2024

외우세요, 고이면 썩어요

전성기 이후 위기가 찾아오는 이유.

  최근 들어 KBO 리그에서 2년 연속 우승하는 팀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실제로 2016년 두산 베어스의 연속 우승을 마지막으로,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간은 매해 다른 팀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現 기아 타이거즈 전신), SK 와이번스(現 SSG 랜더스),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등이 2~4회 연속 우승을 거머쥐며 소위 '왕조'를 구축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우선 리그에 참여하는 팀이 10개로 늘어나고, 팀당 경기수도 144경기로 확대됨에 따라 선수들의 피로도가 높아진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특정 강팀이 계속 독주하기 어렵도록 팀 간 선수 이동을 활성화시킨 점이 가장 큰 이유일 듯 하다.


  강팀은 당연히 다른 팀에 비해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우수한 선수들을 바탕으로 소수의 팀이 '왕조'로 군림하며 리그 내 팀들의 순위가 고착된다면, 해당 팀의 팬들은 행복할지 모르겠지만 하위 팀은 팬덤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리그의 전체적인 흥행에 별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 KBO 리그 운영위는 2012년부터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팀 간 기존 선수 이동을 강제화하는 동시에 신인 드래프트 역시 예전 지역 연고 방식에서 순위별 지명 방식으로 변경했다. 전년도 최하위 팀부터 가장 우수한 선수를 지명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만약 몇 년간 리그의 순위 변동이 별로 없다면, 이론적으로 약팀은 기량이 뛰어난 신입급 선수들이 계속 채워져 강팀으로 발돋움하는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드래프트 제도가 팀 간 전략의 평준화를 위해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라면, 이보다 자연스럽게 선수의 유출이 발생할 수 있는 FA 제도(Free Agent)도 있다. 특정 팀의 1군에서 8년 간 경기를 뛴 선수에게 본래 팀을 포함, 어느 팀과도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우수한 선수가 FA 시장에 나오면 당연히 어느 팀이든 데려가길 원하고, 해당 선수 역시 생에 다시 없을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적극적으로 거래에 나선다. 약팀 입장에서는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여 단번에 팀 성적을 향상시킬 수도 있고, 유니폼 판매나 관중 입장 수익 등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실제 이런 식으로 FA 제도의 효과를 보아 우승한 사례가 심심찮게 나온다. 기아 타이거즈가 2017년 최형우를 영입한 해 곧바로 우승한 것이나, SSG 랜더스가 2022년 김광현을 재영입하여 역사에 남을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시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1위 자리를 놓지 않은 우승)한 것이 FA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혹은 당장 우승은 아니더라도, 우수한 선수를 영입하여 기존 선수들을 자극하고, 노하우를 전수케 하려는 의도도 있다. 강팀의 위닝 멘탈리티를 이식하는 것이다. LG 트윈스가 2017년 김현수를 영입하여 지속적으로 우승을 노리는 팀으로 성장한 것이나, NC 다이노스가 2018년 양의지를 영입한 뒤 2020년 우승하게 된 것도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영입하면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줄 선수들은 주로 강팀에 포진돼 있다. 한 마디로 강팀은 우수한 선수들을 FA와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다른 팀에 뺏길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그렇기에 4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삼성 라이온즈가 최형우, 박석민, 차우찬, 박해민 등이 빠져 나가며 중하위권 이하의 팀으로 쳐졌고, 7년 연속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던 두산 베어스도 김현수, 양의지, 민병헌, 박건우가 잇달아 이탈한 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다시 과거의 강팀으로 도약하자면, 다시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내야 한다.

  결국 성과와 돈이라는 프로의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매커니즘에 철저하게 부합하는 결과다. 우수한 기업 출신의 인재들이 다른 기업으로 스카웃되어 다시 성과를 내거나 성공경험을 전파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인재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건전한 발전을 이끄는 셈이다. 

 


이제는 LG 트윈스가 아닌, 한화 이글스의 주장이 된 채은성. 연봉 2천만 원짜리 신고선수 출신으로 이제는 90억 원 FA 신화를 쓴 인물. 많이 사랑했었다...ㅠ


  반면, 오랜 기간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뚜렷한 인재 영입이나 육성이 없던 조직의 경우 곧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 전성기를 맞았다면 충분히 새로운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할만한 여력이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하는 조직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단지 매년 새로운 조직원을 선발한다고 인재가 건전하게 순환되고 조직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 전체적으로 '경험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 오랜 전성기를 겪은 조직은 지금까지 해오던 성공 방정식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특히 그 방식을 만들어냈거나, 방식에 길들여진 인물들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방식을 경험해보지 않은 채 쉬이 수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조직에서 적잖이 들어봤을 것이다.


  게다가 성공 방정식은 이미 많은 데이터가 쌓여있다. 그러한 '골든 스탠다드'에 딴지를 거는 것은 '뭘 몰라 그렇다'고, 무식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한편 새로운 방식이 성공할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데이터를 갖고 오라고도 한다. 물론, 새로운 방식 역시 작게나마 시험해보고 여러 번 검증한 뒤에 시도해보면 좋겠지만 시간과 비용의 한계가 있어 매번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기회를 받지 못한 주니어들이 다른 조직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거나, 기존의 성공 주도자들에 눌려 그다지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인재의 순환없이 조직이 생동력을 잃고, 점점 '고인 물'화되는 것이다.

  그런 조직에 비록 과거와 현재는 있겠지만, 미래도 있다 할 수 있을까?


  그와 같이 경험의 함정과 승자의 오만에 빠져 몰락한 것이 바로 로마제국와 청나라였다.


  로마제국은 이미 건국한지 천 년이 넘어가는 동안 그 당시 전 세계라 해도 좋을 지중해 일대를 모두 평정하고 오늘날의 현대국가들도 모방할 만한 세련된 통치 체계를 갖췄다. 충분히 자신들이 갖고 있는 방식, 해오던 것들이 최고라고 자부심을 가질 만 했다.

  그런 로마제국의 몰락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드워드 기번이 '인류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칭송했던 다섯 명의 황제 시기(이른바 오현제의 시대. 즉,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섯 명의 황제가 연이어 다스리던 180여 년 간의 최전성기) 직후에 시작됐다.

 

  특히,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황위를 친아들인 콤모두스(영화 <글래디에이터>에도 등장했던 그 폭군. 아버지에게 제왕교육을 제대로 받고 많은 기대 속에 즉위했으나 최악의 폭군으로 취급받아 암살 당한다)에게 물려줬다. 그 전까지 로마황제는 대개 제국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을 불러 양자로 삼아 황제 위를 물려주곤 했다. 그렇게 합리적인 인재 순환이 있었기에 로마의 강력함이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능력이 아닌, 혈연을 중심으로 세습하며 전성기 중에도 누적되었던 제국의 여러 모순들이 표면화되어 몰락이 가속화된다. 로마의 몰락은 물론, 그간 정복전쟁에 기대온 경제구조와 폭발적인 게르만 족의 성장, 긴 평화로 인해 해이해진 군기강 등 복잡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지만 그것들을 수습할만한 유능한 황제가 즉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용렬한 아들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만큼 로마 제국의 축적된 국력과 통치 체계를 과신했던 것 같다. 게다가 거의 200년 동안 긴 평화(Pax Romana)가 이어졌기에 지금처럼만 해도 괜찮겠다는 경험의 함정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콤모두스와 아우렐리우스 황제. 영화에서는 콤모두스가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묘사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콤모두스는 정상적으로 즉위했다(가 암살됐다).


  청나라도 로마의 Pax Romana와 비견되는 '강건성세(康乾盛世,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시기를 이르는 표현)'가 있었다. 

  이 시기 청나라가 얼마나 사회·경제적으로 번영했는지, 인구가 4억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현대적인 의학이나 위생학이 도입된 것도 아닌데, 전 왕조 명나라의 인구가 1억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거기에 더해 강력한 은본위제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은을 모두 빨아 들여 영국와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광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진작 파산했을 것이란 가정도 있다. 실제로 청나라 최전성기 시절은 전 세계 GDP의 33%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오늘날의 최강국 미국의 비중이 20~22%에 이른다고 하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 하다.


  그렇게 강력한 청나라도, 강건성세의 마지막 황제인 건륭제 이후로 점차 쇠퇴기에 접어든다. 

  다만 건륭제는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달리 비교적 유능한 아들인 가경제에게 제위를 물려줬다. 그럼에도 오랜기간 누적되어 왔던 관료제의 폐해, 화신(和珅)과 같은 권신들의 부정부패로 피폐해진 제국을 일으켜 세우긴 역부족이었다. 

  로마와도 유사한 면이 있는데, 제국의 영역이 넓어지고 폭발적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필연적으로 많은 행정력과 국고 부담이 커지는 것이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부정부패는 만연한데, 국고 부담이 커지면 백성들의 삶은 더 피폐해진다. 피폐해진 삶 속에서 정상적인 과거제도 등을 통해 지도층으로 편입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게 사회 지도층이 순환되지 않고 고착화되면 어느 나라고 버티지 못한다. 내부의 반란으로 뒤집히거나, 외부의 침입으로 멸망하는 것이다.

  가경제 치하의 청나라 역시 백련교도의 난과 같은 내란에 시달리고, 치밀하게 청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아편을 투입했던 영국에 치였다. 워낙 그간 축적해둔 국력이 막대하여 그 후로도 100년 가까이 버텼지만 망국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매년 신입이나 경력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을 육성하고 적응시키기 위한 교육 체계·승진 체계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제도가 있는 것만으로 조직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피가 공급되진 않는다. 그리고 그저, '새로운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것도 아니요, 조직에 오래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새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변화의 의지가 없는 사람, 지나치게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 바로 고인 물이다.

  

  물론 그들도 분명히 과거의 어떤 성과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라오고 버텨왔을 것이다. 그 공로는 인정한다. 다만, 일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때가 되면 유능한 이에게 뒤를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본인 스스로 썩지 않도록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고 적응해야 한다. 자신의 방식을 지켜내기보다, 새로운 방식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으로 보완해줘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과거 성공한 사람들이 그랬듯, 시행착오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 때, '내가 예전에 해봤는데 그건 안돼'보다는 '그 때는 안됐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될 수도 있다.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자. 그게 당신과 조직이 영원히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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