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에 보면, 마지막에 주인공 고니(조승우 扮, 그러고보니 내 필명과 비슷한데)가 최종 보스 아귀와의 일전을 위해 정마담(김혜수 扮)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정마담은 아귀와 고니가 도박을 벌이는 틈을 타 돈을 빼돌릴 생각이었지만, 어찌됐든 고니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 어떻게 칠거냐며 자못 걱정스레 묻는다.
그러자 고니가 무심한 듯 대답한다.
"그냥 자연빵으로 칠거야."
고니 자신보다 타짜로서 더 현란한 기술을 가진 아귀를 상대로 어설프게 기술쓰다가('구라'로 치다가) 봉변을 당하느니, 말 그대로 운에 맡겨 보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고니는 기술을 쓴 것처럼 아귀에게 덫을 놓은 뒤에 통쾌하게 역전해 승리한다. 운에 기댄 부분도 있지만 본인 나름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본 것이다.
야구에서도 신기하게 운빨이 잘 받는 선수가 있다.
2022 시즌을 끝으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한 이대호는, 타격 8개 부문 중 7개를 석권할 정도로 전설적인 타자였지만 우승은 커녕 한국 시리즈 문턱에도 못 가봤다(물론 일본 리그에서 우승한 적은 있다). 그에 비하면 LG 트윈스의 서브 포수 허도환은 꽤나 평범한 기량을 가진 편이고, 팀도 5번 옮겼지만 우승은 3번이나 경험했다. 특히, SK-KT-LG를 번갈아 다니며 통신사를 운영하는 3개 회사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43년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선수다.
선수 뿐 아니라 감독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화 이글스를 맡고 있는 김경문 감독은 현역 최고령 감독이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표팀의 전승 우승을 이끈 명장이지만 아직도 KBO 리그 우승 경험이 없다. 반면, 난생 처음 감독을 맡아 우승한 경우는 삼성 라이온즈 선동렬과 류중일(심지어 여기는 4년 연속 통합우승), 두산 베어스 김태형 등 꽤나 많다. 심지어 올해 기아 타이거즈의 이범호 감독 역시 초년차에 역대 최연소 우승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대호 선수나 김경문 감독이 실력이 없어서 우승을 못했을까?
만년 2등 감독이라 꼽히던 김경문 감독이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야구에서 이기는 것은 운이고, 지는 것은 실력이다."
그렇기에 흔히, 용장·맹장(용맹한 장수), 지장(지혜로운 장수), 덕장(인덕이 있는 장수)보다 뭐니뭐니 해도 '운장(운이 좋은 장수)'이 최고라고 하는 것일까.
그 과정이나 본질적인 실력을 떠나, 언뜻 결과만 본다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이탈리아의 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밸리가 집필한 <군주론>은 말 그대로 '훌륭한 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이다.
중개 무역을 통해 막대한 경제력과 문화·예술적 성취는 이루었지만,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한 프랑스-스페인에 매번 침략받는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썼다고 한다(한편으로는, 당시 피렌체 정부에서 축출당한 마키아밸리가 재기를 위해 권력자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아부하기 위해 지어 바쳤다는 설도 있다).
이웃나라들의 위협에 지속적으로 핍박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군주 아래 중앙 집권을 이루는 길 밖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군주가 그 과업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본인 스스로 유능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권모술수와 같은 비도덕적인 행위조차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래로, 중세 스콜라 철학에 이르기까지 보편 타당한 도덕적 가치가 추구되던 시절 임을 감안한다면 무척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다만 마키아밸리가 용인하는 군주의 비도덕적 행위는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정적이나 외적을 제거하는 등, 국가를 이롭게 할 경우에 한한 것인데, 이를 일부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마키아밸리가 <군주론>에서 강조한 훌륭한 군주의 조건은 크게 '비르투(Virtu)'로 대표되는 군주의 역량과 그 반면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도 없는 '포르투나(Fortuna)', 즉 운으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 능력과 운이 모두 따라줘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선 비르투는 군주 자신이 얼마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갖출 수 있는, 지성·체력·용기·군사적 식견·통솔력·기민함과 교활함 등을 이른다. 어떠한 결과물을 만드는데 있어서, 충분히 자신의 의지로 통제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행운의 여신(포르투나)' 몫이다. 이 여신이 내게 웃어주면 정말 훌륭한 군주가 될 수 있고, 뺨을 때리면 비록 개인의 능력이 받쳐줘도 몰락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다소 조심스럽게, 남성 중심주의가 팽배했던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며 읽을 필요가 있는데, 마키아밸리는 비르투에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부여했고, 포르투나는 변덕스러운 여성에 빗댔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강인한 남성답게, 그리고 대담하게 운명의 여신을 다루어라. 운명의 여신도 결국 그 대담함에 끌릴 것이다'인 것이다(사실 이조차 나름 순화해서 옮겨 적었다. 혹시라도 너무 언짢아 마시라).
성별로 은유한 것보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 앞에서 모든 것들이 쓸려 내려가도록 두지 말고, 평소에 제방을 좀 더 높게 쌓거나 도랑을 깊게 파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대처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운에 너무 사로잡혀 있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보자는 태도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 '카이사르의 행운'이나 '나폴레옹의 행운'과 같은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순신의 '명량해전'이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이 치른 23번의 전투 중에서 전략적인 가치가 최고였다곤 할 수 없지만, 가장 기적적인 전투임에는 분명하다.
이미 여러 차례 드라마나 영화에서 묘사한 바 있지만 역사적 사실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었다. <불멸의 이순신>같은 드라마에서는 그래도 해전이 개시될 때부터 아군의 전선이 3척 이상은 버티고 있던 것으로 연출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은 '완전히 혼자' 1시간 가량 싸웠다. 이순신의 대장선 1척 외 나머지 전선 11~12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로부터 400미터나 뒤에 쳐져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순신 홀로 133척의 왜선들을 상대로, 그것도 역류의 물길 앞에서 1시간이나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아군이나 적군이나 모두 질려 버렸다. 왜군이 즐겨쓰는 '등선육박전술(적선에 갈고리를 걸어 올라 백병전으로 싸우는 전술)'만 해도 대장선 하나쯤은 10분이면 결단나고 전투는 그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에 이순신이 무너지면 제 각각 도망치려던 부하들도 그제야 초요기를 올린 대장선에 슬금슬금 다가와 싸움을 거들었다. 이후 물길이 조선군에 유리한 쪽으로 바뀌어 흐르면서 명량해전은 개전 약 3시간 만에 완벽한 조선 수군의 승리로 종결된다.
이순신은 본래 도박을 즐겨하는 장수가 아니었다.
항상 치밀하게 적진을 살피고, 지형과 아군의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를 미리 다 짜둔 뒤에 별 변수도 없이 본인 의도대로 싸워 모두 승리해왔다. 애초에 100척에도 못 미치는 조선수군으로 1,000척이 훨씬 넘는 왜적과 싸워하는 처지였다. 단 한 번의 패배도,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그리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단 한 척의 전선도 잃은 바 없는 무서운 양반...)
그런 그에게도, 명량해전은 조선 전체의 명운을 건, 물러설 수 없는 전투였다.
조선수군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의 고초를 겪는 동안 1만 명의 수군과 150척의 함선을 잃었다. 병든 몸으로 다시 복귀한 그에게 기적처럼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었지만, 병사들과 함선을 더 모으고 제대로 수습할 틈도 없이 적이 진격해왔다. 그가 물러서면 조선이 망한다. 그래서 평소의 그답지 않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정신으로 '자연빵'으로 맞붙은 것이다.
그렇게 이긴 뒤에 이순신도, 그의 일기(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는 실로 천행이었다(此實天幸)."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이 때만큼은 하늘이 이순신에게 감읍한게 아닐까 생각한다.
체스터 니미츠나 버나드 로 몽고메리같은 2차대전기 장성들도 이순신을 이미 명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일본 만화에서 이순신이 최종 보스마냥 묘사되고 있다(차올라라 국뽕이여)
운이 중요한 것은 맞다.
사실 오히려 나이 먹을수록, 우리의 삶에 운이 좌우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취업이나 이직, 하다못해 회사 내에서의 평가나 승진을 할 때에도 누군가는 실력과 노력에 비해 더 잘 풀리는 것 같고, 누군가는 억울할 정도로 불행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나마 운이 좋다면 다행이다. 문제는 불행할 때다.
우리가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기에, 가장 자주 행운과 불행을 겹쳐 만나게 된다. 그래서 자주 불행해하고, 불행을 토로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그럴 때 주변에 하소연하고, 불만을 토로하는게 사람이다. 한 두 번은 괜찮다. 또 그렇게 비우듯 털어내야 한결 가볍게 다시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세 번 넘어서까지 불행에 젖어 있지는 말자.
마키아밸리가 언급했듯, 최소 반은 통제가 가능한 나의 역량개발에 힘을 쏟자. 계속 같은 방법으로 해도 안되면, 방법을 바꿔 보자. 열심히 노력도 하고, 반성도 하고, 바꿔도 봤는데 안된다면 하다못해 본인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보자. 그를 질투하기보다, 그의 어떤 점들이 계속 행운을 불러오는지 면밀하게 관찰해보자. 분명히 남과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비춰 배울 것은 배워보고, 좋은 기운을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