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운동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헬스장을 가는 대신 자전거를 열심히 타기로 결심했다. 출근 전, 퇴근 후 하루 두 번씩 총 50km, 비오는 날 빼고는 거의 매일 나갔으니 1주일에 250~300km 이상은 탔었나보다. 그렇게 겨울이 오기 전까지 4개월을 꾸준히 달렸다.
주변에서 힘들지 않냐, 대단하다고 추켜 주기도 했는데 나는 딱히 감흥이 없었다. 어려운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나 성취감도 별로 없었다. 그냥 '운동을 해야겠으니 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밌네'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전거를 그렇게 타기는 커녕, 1주일에 2회 이상 헬스장에 가는 것도 힘들어 억지로 한다. 그 때만큼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 가끔 덩그러니 놓인 자전거를 보고 있으면, '내가 저걸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게 탔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는, 억지로 뭔가를 너무 의식하면서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내심의 한계가 있다. 어느정도 중단기 목표를 위해 한시적인 고통을 감내할 수는 있지만, 그게 기약없이 길어지면 나가 떨어진다. 견딜만 하니 견뎌지는 것이고, 재밌으니 힘든 것을 잊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는 상태'에 올라타면, 어렵고 힘든 과업들을 해치울 수 있다.
예전에 누군가 의사를 인터뷰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의사가 되기까지 공부하는게 정말 힘들지 않았느냐, 무슨 비결은 없느냐는 질문에 의사는 '그냥 했어요. 남들이 힘들다고 하고, 저도 분명히 힘들긴 했는데 솔직히 그냥 할 만 했어요'라고 대답했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의사가 삶의 모든 면에서 남들에 비해 특출난 인내심을 지녔다기보다, 적어도 공부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무던함을 갖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도 만약 공부하는 게 '죽을만큼' 힘들었으면 그렇게 지속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의사가 될 정도의 머리는 디폴트).
윗 이야기의 의사 인터뷰는 찾지 못했고, 이 형님 책도 어릴 때 감명깊게 읽었는데... 형님 난 어렵드라...
개인 뿐 아니라, 조직도 신바람나게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경우가 있다.
결과론이지만 대개 성공한 스타트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강한 목표의식과 공유된 가치, 자발적인 지식교류 등이다. 인원이 적고, 한정적인 비즈니스 모델 하에서 업무 영역의 구분도 큰 조직보다 느슨한 경우가 많아 '일을 알아서 찾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비즈니스가 성공했을 때의 끝그림을 생각하며 힘듦을 참기보다 잊어내는경지에 이른 것처럼도 보인다.
중국 역사상 최고로 통일을 일궈냈던 진나라가 2세 황제 호해와 조고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지고, 다시 과거의 6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한 혼란기에 두각을 나타낸 것이 그 유명한 초(楚)나라의 항우(項羽, 사실 본명은 항적이며 '우'는 字)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 초한쟁패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은 유방이다.
약 3년 간의 전쟁에서, 사실 유방은 항우에게 매번 지기 일쑤였다. 무려 56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항우가 원정을 간 틈을 타 그의 본거지까지 공략했다가, 전갈을 듣고 바람처럼 달려온 항우의 3만 군사에게 거의 재기불능이 될 정도로 박살이 난 적도 있을 정도다. 팽성대전이라 불리는 그 전투에서 패배한 유방은, 자신의 어린 아들·딸을 마차에서 밀어내며 도망가야 했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 싶을 때마다 유방을 일으켜 세운 것이 소위 한삼걸(漢三杰, 한나라의 통일과 건국의 최고 1등 공신 3명)로 불리는 신하들이었다.
재상 소하(蕭何)는 유방이 10만 명씩이나 병력을 잃어 패주하는 때에도 그만큼의 보충병을 늘상 채워줬고, 전략가 장량(張良)은 항상 유방의 곁에서 전쟁을 치르며 외교 및 인재 등용·운용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장군·대원수 한신(韓信)은, 유방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아 드넓은 하북 지역을평정하며 군세를 불려 항우에게양면전선을 강요했다. 최후의 전투에서 항우에게 무려 십면매복(十面埋伏, 10개 방향에서 매복하여 포위공격)을 선보여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 역시 한신의 솜씨였다.
초나라의 패왕(覇王, 힘에 바탕을 둔 최강의 왕이라는 의미. 역사상 항우만 사용했던 전용 칭호) 항우는, 세계사로 넓혀 보아도 십자군 전쟁기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와 더불어 인간흉기로 꼽히는 인류사 최강의 장수인 동시에 최고의 전술가였다. 애초 혼란기 제대로 된 무장이나 훈련을 거치지 않은 반 농민이나 다름없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진나라를 비롯한 중국 전역을 2년 만에 평정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그를 대변하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 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 하다)'란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항우는 특히 '점(點)'에 강했다. 한마디로 항우 스스로가 쐐기가 되어 어떤 점을 파고들면 그대로 모든 적군들이 으스러졌다. 유방도 분명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지휘관의 반열에 들만한 군사적 재능을 가졌었으나, 번번이 항우의 창끝에 돌파 당했다.
그래서 유방과 유방의 신하들은 전략을 바꿨다.
점에 강한 항우에게 '선(線)'으로 대응한 것이다. 최고 사령관인 유방이 항우를 정면에서 대적하되, 한신이나 조참(나중에 소하에 이어서 두 번째 재상이 되는 그 조참)·관영 등의 장수에게 별도의 병력을 나눠주어 항우의 측면과 후방을 괴롭혔다. 한 때 항우의 부하였던 경포나 별개의 군벌이었던 팽월과도 동맹을 맺어 항우의 보급선을 끊는 등 게릴라 활동을 전개하도록 했다.
그러자 항우가 참전하는 개별 전투에서는 비록 한나라가 패배했음에도, 전체적인 판세가 점차 초나라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교통이나 통신 수단이랄 게 없던 당시에, 항우가 넓은 전선을 오가며 모든 전투에 직접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항우의 신하들이 유방의 신하들 못지 않게 싸워줘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유방의 신하들은 유방에게서 충분한 권한을 위임 받았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전쟁을 수행했다. 그들은 또한 유방처럼 대부분 백성 내지는 천민 출신이었는데(유방은 중국 역사상 첫 번째 非귀족 출신 황제다), 전쟁 속에서 놀랍도록 성장해 나갔다. 애초에 소하는 고을 아전 출신이었고, 조참은 감옥을 지키던 옥리에 불과했다. 유방의 동서이자 훗날 한나라의 맹장으로 거듭나는 번쾌는 심지어 개백정 출신이었다.
같은 고을, 흙수저 출신으로서의 동류의식도 있었겠지만, 그들 스스로 성장을 맛보며 인생이 역전되어 가는데 대한 강한 성취욕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유방은 중간중간 적절한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동기부여에 힘썼다.
항우의 신하들이 너무나 유능하고 강력한 항우의 그늘에 가려 있던 것과 다른 양상이었다. 오히려 초나라 쪽은, 패왕인 항우 본인부터 귀족 혈통이었고 신하들 역시 한나라와달리 고귀한 혈통이 많았다. 그렇기에 항우 진영 내에서는 비귀족 출신의 인재가 자리잡기 힘들었다.
항우 자신의 야전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너무 눈부신 탓에 휘하 장수들에게 좀처럼 위임을 하지 않은 점도 문제를 심화시켰다. 거기에 더해, 항우는 제법 인색한 면이 있어 전공을 세운 신하에게도 보상을 잘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전황이 항우에게 유리할 때조차 초나라에서 한나라로 전향한 장수는 있어도, 한나라에서 초나라로 전향한 장수는 거의 없었다.
결국 초나라 장수들은 항우가 무섭기도 하고, 전공을 세워봤자 별다른 보상도 없으니 한나라 진영처럼 '알아서 싸우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항우의 지시를 따르다가 각개격파 당했다. 전선의 한 곳이 그렇게 구멍날 때마다 항우는 불같이 화내며 무능한 제 부하를 몰아부쳤고 스스로 그 전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면 다시 유방이나 다른 한나라 장수들이 항우의 뒤를 찔러댔다.
항우는 점차 그렇게 홀로 소모되어 갔다.
항우로서는 본인이 직접 뛰어든 전투에서는 변함없이 이기는데도 점점 세력이 쪼그라드는 상황을 거의 최후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한군에게 동서남북으로 포위되는 '사면초가(四面楚歌, 항우의 기를 빼놓기 위해 한군이 항우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초나라의 노래를 불러댔다. 항우는 그 노랫소리를 듣고, '저렇게 많은 초나라 사람들이 한나라로 귀순했는가'하는 충격에 휩싸인다. 애초에 유방과 한군의 대부분이 초나라 백성 출신이다)'의 순간을 맞는다.
초한대전의 마지막이었던 해하전투에서 마침내 항우를 꺾고 천하를 통일한 유방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역발산기개세의 항우가 내게 지고,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자 한의 신하들이 항우의 포악함과 인색함을 꼬집거나, 하늘의 뜻이 본래부터 유방에게 있었다는 등의 말씀을 올렸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유방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경들 모두 틀렸다.
무릇 군영 안에서 계책을 마련해 천리 밖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자방(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을 위로하고 군량을 준비하여 공급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
그리고 백만대군을 이끌어 싸우면 항상 이기고, 성을 공격하면 항상 함락시키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이 셋은 모두 인걸인데, 내가 그들을 능히 부릴 수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한 까닭이며,
항우에게는 그나마 범증(항우의 전략가)만이 있었을 뿐인데 그마저 제대로 다루지 못했으니 이것이 내게 패한 까닭이다."
그저 항우에게 인재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한신이나 진평(조참 이후 재상)은 원래 항우의 수하에 있었다가 천대 받아 유방에게 귀순한 것이고 장량조차도 잠시 항우 곁에 붙들려 있었다. 특히나 장량은 항우도 제법 공들여 대접했으나, 그것을 모두 마다하고 불리한 상황에 처해있던 유방에게 다시 도망쳐왔다.
그들이 왜 모두 항우를 버리고 유방에게 왔을까?
결국 항우 곁에서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고, 유방에게 와서는 신나게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고증엔 안 맞지만 대충 한삼걸이라 우겨보자(사실 종이가 없던 시대다). 책략가 장량은 특히나 정사에서도 대놓고 '백옥같은 피부에 미녀처럼 보인다' 할 정도의 꽃미남이었다고.
아무리 잘난 리더라 해도 혼자 일할 수는 없다.
특히나 조직이 커지고, 업무가 방대해지면 그의 날카로움도 무뎌지고 충만했던 에너지도 고갈될 수 있다. 결국 어느 시점부터는, 본인 못지 않게 손발이 되어 '알아서 싸워줄' 든든한 수하들이 필요하다.
정말 유능하고 열의있는 동료·후배를 만나는 데에는 어느정도 운이 필요하지만, 만났다 하더라도 항우처럼 죄다 놓쳐 버리면 소용이 없다. 그들을 어떻게 육성하고 곁에 둘지는, 이미 한고조 유방이 보여준 바 있다.
사실 유방도 의심 많기로는 항우 못지 않았지만, 적어도 신하들이 없어도 될 정도로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는 웬만하면 본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전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과 보상을 제공했다.
대장군 한신이 유방으로부터 한 갈래 군사들을 넘겨받아 하북의 제나라를 제압했을 때, 유방에게 서신을 보내 '제나라 백성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신을 '가왕(假王, 즉 임시왕 혹은 가짜왕)'으로 봉해주소서'라 청한 적이 있다. 그 때 유방은 한창 항우에게 깨져가며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던 와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임시 조치라곤 하지만 신하가 감히 왕이 되게 해달라니, 유방으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방은 장량과 진평의 조언을 들으며 화를 삭이고, '사내 대장부가 되어 가짜왕이 될 수야 있느냐. 기왕 왕이 되고자 한다면 진짜 왕으로 봉한다'며 한신이 요구한 것 이상의 보상을 내렸다(한신은 이 밖에도 유방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일들이 제법 있었고, 탁월한 군사적 역량에 비해 정치력이 크게 부족해 내부의 적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한신의 군사적 영향력을 두려워했던 유방의 황후 여치와 정적들의 음모에 의해 훗날 처형 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방은, 백성들에게 자애로운 군주였다.
통일 후 신하들에게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검소하고 소탈하며 관대한 황제에게 백성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강한 명분을 쥐고 있었기에 유방의 통치력은 죽을 때까지 유지됐고, 중국 역사상 가장 긴 400년 제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한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의 위상은, 오늘날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한족(漢族)'이라 일컫고, 자신들의 쓰는 문자를 '한자(漢字)'라 하는데서 잘 드러난다.
요샛말로 유방은 스스로가 '플랫폼'화 되었던 리더로 보인다.
리더로서의 인간적인 매력을 통해 인재들을 모으고, 인재들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던 새로운 경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주고, 지속적으로 믿음을 심어줬다. 항우와 같이 스스로가 조직의 주인공이 되려하기보다, 구성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보상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조직 차원의 목표를 달성했고, 그 성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뒀다.
항우가 장기판을 화려하게 휘젓고 다니는 강력한 말 그 자체였다면, 유방은 장기말들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던 셈이다(장기판이 초한대전을 옮겨 놓은 보드게임 임을 생각한다면 참 아이러니 하다).
이렇듯 유방은 2,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돌아보아도 가히 완벽한 리더의 표상처럼 느껴진다.
그럼 이제, 우리 조직을 돌아보자.
우리 조직의 리더는 스스로가 장기판의 말인가, 혹은 말들을 신나게 날뛰도록 움직여주는 보이지 않는 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