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의 총성으로 드골이 얻은 것
"나는 다른 것 신경 안 써. 성과만 내."
직원은 성과로 말하고 리더(혹은 회사, 경영자)는 보상으로 말하는게 미덕이라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 저렇게 말하는 리더들이 심심찮게 많다. 어차피 회사에서 일만 하고, 구태여 사회생활이란 미명 하에 관계관리하는 것도 귀찮은데 차라리 쿨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곰곰 생각해보면 참 매력없게 느껴진다.
쿨내 풀풀나긴 하는데, 건조하다. 그래서 카드(성과)가 맞지 않으면 알아서 이별을 고해야 할 것만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단순히 운이 안 좋을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을텐데 아무런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성과, 곧 결과만 보겠다'니 편협하다.
'시간 x 사람 = 산출물'과 같이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법을 연구했던 것 마냥 몰인간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리더는 사람들을 움직여 일을 시키고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담당자일 때야 일에만 몰두하면 됐지만, 리더는 일보다 사람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수행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저마다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어떤 동기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적절히 일을 배분하고 그 일에 몰입시켜야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사람들을 일에 몰입시키려면 먼저, 리더를 믿고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끔 부담스러운 일, 당장은 납득되지 않는 일도 '리더를 믿고'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리더가 갖춰야할 여러 요건 중, '리더 자체의 매력'이 알파이자 오메가인 이유다.
※ 바쁜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무방합니다.
샤를 드골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그는 나치 독일에 저항하여 자유 프랑스군을 이끌었던 전쟁 영웅이며 독립 투사였고, 전후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경제재건을 이룩한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파리 국제공항과 프랑스 해군의 항공모함에도 그의 이름을 붙여줬다.
샤를 드골이 그토록 프랑스인들의 애정과 지지를 받기까지는 제법 극적인 사연이 숨겨져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때만 해도, 샤를 드골은 별 하나 준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본래 대령이었으나 비상시국 하에서 급히 진급시켜준 것이다(물론, 현대적인 기갑부대 창설을 주장하는 등 능력은 충분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육군국이면서, 필리프 페탱 원수·모리스 가믈랭 원수와 같은 1차대전의 전쟁 영웅들이 즐비한 프랑스군에서 드골처럼 말단 장성이 눈에 띌 리가 없었다.
그러나 드골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이후부터 존재감을 드러낸다.
독일에 항복한 비시 프랑스(남부 도시 비시에 기반을 둔 2차대전기 공식 정부)에 반발하여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이, 런던에 망명 정부인 '자유 프랑스'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는 덩케르크와 비시 프랑스에서 탈출해온 프랑스 병사들을 불러 모아 자유 프랑스군을 조직하고, 영국 BBC 방송에 출연하여 '드골'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물론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비시 프랑스 정부가 대부분의 프랑스 본토 병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해외 식민지들 역시 일단 '합법적인 정부'인 비시 프랑스를 지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빈약한 기반의 드골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그를 위험한 야심가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만이 닿은 힘껏 드골을 밀어줄 뿐이었다.
그러나 드골은 영리하게 프레임을 싸움을 벌여 나갔다.
우선 비시 프랑스를 굴욕적인 항복을 택한 괴뢰 정권으로 규정해 명분에서 앞섰다. 그러자 점차 해외 식민지 정부들도 드골의 자유 프랑스로 귀순해왔다. 그리고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시킬 때 자유 프랑스군 2개 사단을 무리해서 참전토록 했다.
드골 본인이 프랑스(파리)의 해방자로 등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상 파리를 해방시킨 연합군의 주력은 미국과 영국이었지만, 파리 시민들은 자유 프랑스군을 반겼다. 그런 반응을 기민하게 캐치한 드골은 시내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파리 곳곳에서 독일군이 산발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드골이 개선문을 지나고 상젤리제 거리를 거쳐 콩코드 광장에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놀란 군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장교들도 몸을 사리거나 드골에게 피신을 권했다.
그러나 드골은 무개차(천장이 없는 퍼레이드용 자동차)에 올라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행진을 계속했다. 그가 파리시청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리며 시청 앞 광장에서도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드골은 이번에도 태연했다. 오히려 차에서 내려 노틀담 성당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일설에는 그의 발치에 총알 파편이 튈 정도였다고도 한다.
그리고는 각종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며 말했다.
"파리는 상처입었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당했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그런 드골에게 열광했다.
게다가 그는 196cm의 장신이었고 시종일관 당당한 자태를 뽐냈다. 파리 입성부터 인터뷰까지 모든 모습을 지켜봤던 미국 기자는 '이 사건으로 드골은 프랑스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평가했다. 드골을 못마땅해 했던 루즈벨트 역시 차기 프랑스의 지도자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드골은 충분히 유능한 사람이었다. 갖은 악조건도 모두 극복해낼 정도로 강한 의지와 열망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단숨에 일개 망명 정부의 별 하나짜리 장성에서 대통령으로까지 올려 세운 것은, 그가 파리 열병식에서 보여준 미칠듯한 의연함과 카리스마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가 만약 잠시라도 머뭇거렸거나 다른 군중들처럼 몸을 피했었다면 파리 시민들을 그토록 전율케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사람은, 매력적인 존재에게 무장해제되기 마련이다.
연인처럼 쓸개고 간이고 빼줄 정도로 만들진 못하더라도, 리더라면 '딱 한 번이라도' 구성원들을 소름끼치도록 당겨올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단합된 조직으로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러니 서로가 만족스러운 성과와 보상이 아니면 거래가 끊기듯 사라져버리는 편협한 관계에 매몰되진 말자.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은 매력적인 리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