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이 Sep 18. 2024

조직에는 나쁜 착한놈이 필요하다

누가 페탱처럼 다크나이트가 될 것인가?

  "그걸 왜 굳이 너가 해?"

  사원-대리 시절 꽤나 까칠한 선배 노릇을 하던 내게, 다른 선배가 말했다.


  나는 조직에서는 누군가가 악역을 도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도에 문제가 있거나, 실수를 반복할 경우에는 강하게 훈육해야 나름 깨닫고 선명하게 각인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뒤에서 따로 다독여주거나, 다른 선배들이 풀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협상법에서도 윽박지르다가 부드럽게 회유하는, 소위 Bad cop-Good Cop 스킬이 있지 않은가.


  근데 나를 오래 지켜보던 선배가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선배가 보니, 내가 쓸데없이 후배들을 괴롭히거나 미워하진 않더란다. 오히려 방식이 어떻든 후배들에게 관심도 많고 책임감을 갖고 있는게 보인다고 했다. 

  선배의 그 말이 퍽 위로가 됐다. 그리고 보람도 있었다. 그래서 '선배가 알아주시면 된다, 이런 역할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왜 굳이 내가 그 역할을 하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후배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 했다. 실제론 나쁜 놈이 아닌데, 어울리기 힘든 사람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좀 서운했다.

  그러나 누군가라도 진심을 알아줬다는 생각에 이내 고마움이 더 커졌다. 어찌됐든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이후로는 후배들을 대하는 방식이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해졌던 것 같다.




  조직은 많은 사람, 많은 일, 많은 상황에 직면한다.

  누구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될 때도 있다. 가령 회사에서 인원을 감축할 때, 주관 부서는 HR이 맞지만 HR부서 내 누구도 그 일을 하고 싶진 않을거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해야한다.


  앞선 글에서, 자유 프랑스군을 조직해 파리를 해방시킨(실제론 연합군이지만) 샤를 드골에 대해 이야기했다. 드골이 화려한 화이트나이트(White Knight)였다면, 그와 반대로 다크나이트(Dark Knight) 역할을 수행했던 비운의 장성이 있다. 

  바로 훗날 드골에 의해 괴뢰 정부로 낙인 찍혔던 비시 프랑스 정부의 수장 '필리프 페탱' 원수다.


  필리프 페탱은, 2차 대전 당시 별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드골과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별 다섯개 원수였다. 1차 대전 베르뒁 전투의 영웅으로 종전 후 세계최강 프랑스 육군에서도 단 세 명 뿐인 최고위 장성이었다. 1940년 독일이 프랑스에 침공할 당시에는 이미 80살의 노구로, 스페인 대사로 임명돼 나가있었다.


  무력하게 무너진 프랑스 정부는 뒷수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프랑스 최고의 영웅 페탱을 본국으로 소환하여 총리를 맡기고자 했다. 80살의 영웅은, 곧바로 조국의 부름에 응했다. 그러자 스페인의 총통이자 한 때 페탱에게서 군사학을 배웠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만류했다.


  "선생님, 저들은 선생님께 패배의 모든 책임을 떠넘길 생각인 겁니다. 가지 마십시오, 치욕의 길입니다."

  애제자의 자못 진심 어린 충고였지만, 페탱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소 총통. 하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오."


※ 바쁜 분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무방합니다.


말년의 팔자가 참으로 드셌던 분.

  



  귀국한 페탱은 전임자 레노 수상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은 뒤에 곧바로 독일에 항복했다.

  비록 독일군에 비참하게 패배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50개 사단을 갖고 있었고 해외 식민지도 건재했다. 여전히 항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찮았다. 


  그러나 페탱은 냉정한 현실주의자였다.

  독일군이 프랑스에 동원한 병력만 140개 사단이 넘었다. 겨우 50개 사단으로 대적한들 승리할 수도 없지만, 대부분의 군수물자들이 독일군이 점령한 북부에 몰려 있었다. 탱크타고 몰려드는 독일군을 향해 빈약한 소총으로 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민족의 반역자, 비굴한 부역배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페탱은 6주 만에 항복했다. 그리고 세계가 경악했다.

페탱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고했다. 


  "우리 조국의 영광의 시절(1차 대전 승리)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어려운 날(2차 대전 패배)에도, 저는 여러분 곁에 함께 하겠습니다."


  독일이 프랑스 북부 영토 60%를 직접 통치하고, 페탱의 프랑스 정부는 남부 도시 비시(Vichy)를 새로 수도로 삼아 나머지 40%를 다스렸다. 모든 프랑스인들을 구하진 못했지만, 페탱이 빠르게 항복한 덕분에 독일군에 의한 무의미한 학살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탱은 독일에 겉으로는 협조하는 척 하면서도 나름 뻗대곤 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때에도 프랑스군 파견 요청을 거절했고, 군수 공장에 200만 명의 노동자를 보내라 할 때에도 억지로 60만 명을 보내는 대신 프랑스 포로 10만 명을 석방토록 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페탱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격분했지만, 이미 공식적으로 항복한 정부를 상대로 별다른 수가 없었다. 사방이 적인 독일 입장에서는 비시 프랑스나마 동맹(사실상 식민지지만)으로서 끌고 가야했다.




  드골은 영국에서 망명 정부를 세우고 그런 비시 프랑스와 페탱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해방된 뒤에 패텡을 반역자로서 법정에 세웠다. '당연히' 사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90살에 가까운 나이를 고려해 종신형으로 감형해줬다. 드골의 배려였다.


  아마도, 드골 역시 페탱의 상황과 심정을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페탱이 불과 6주 만에 항복한 덕에, 프랑스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력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탱이 반역자로서 존재해줬기에, 드골은 상대적인 선역을 취할 수 있었다. 패텡마저 항전을 외쳤다면 드골이 두각을 나타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페탱은 방패였고, 드골은 칼이었다."


  페탱은 방패로서 프랑스를 지켜줬고, 드골은 칼로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말이다.

  페탱의 행동은 아직도 프랑스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단다. 프랑스 사람과 친해지려면 페탱의 이름을 꺼내지 말라고도 한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프랑스 곳곳에서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있는 샤를 드골과 달리, 다크나이트 페탱은 아직도 그렇게 모호하게 남았다.

  그러나 가지 확실한 것은, 페탱은 굳이 총리를 맡지 않아도 되었는데 스스로 떠안았고, 항복한 후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점이 없다는거다. 그를 '완전한 나쁜 놈'으로 봐서는 안되는 근거다. 



  

  어느 조직에서든 다크나이트는 필요하다.

  다만, 누가 그 일을 기꺼이 떠 맡느냐는 것이다. 내막을 알 길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크나이트를 비난한다. 그런 압박을 이겨내면서까지 '굳이'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을까.


  영화 <다크나이트> 속에서 배트맨은 고든 서장과 그의 아들이 알아줬다. 페탱도 여전히 배신자의 낙인을 완전히 벗겨내진 못했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게 재평가 받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손가락질 받고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다크나이트들이여 부디 힘내시라.

  그래도 조직에는 당신들 같은, 나쁜 착한 놈이 필요하니까.


목적과 의도는 반드시 선해야 해요. 안 그럼 그냥 나쁜 놈.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당신 매력은 어디 팽개쳐뒀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