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 부르는)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낮게 난간이 둘려져 있는 이 진열실들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들이 나 있다. 그 어떤 육각형 진열실에서도 끝없이 뻗어 있는 모든 위층들과 아래층들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진열실들의 배치 구도는 일정하다. 각 진열실에는 두 면을 제외하고 각 면마다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들이 들어서 있다. 책장의 높이는 각 층의 높이와 같고, 보통 체구를 가진 도서관 사서의 키를 간신히 웃돌 정도이다. (p129)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소리 내어 읽는다.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을 느낀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낭독하며 그 광막한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보르헤스가 묘사한 도서관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라 우주 그 자체이다. 낭독을 통해 이 기묘한 공간을 탐험한다. 무한한 육각형의 반복, 알파벳의 무작위한 조합으로 가득 찬 책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진리가 적힌 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묘사한 도서관의 모습에서 수학적 아름다움까지 느끼게 하는 보르헤스의 상상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은 보르헤스가 만든 우주의 은유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죽고, 문명도 사라질 수 있지만 세계의 구조(도서관)는 계속 존재한다는 의미다. 보르헤스는 질문한다. "우주는 의미가 있는가?" 그는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찾지 못한다. 의미가 없다면, 그럼에도 우리는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미 가진 평온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정당화해 줄 어떤 진리를 찾으려고 끝없이 헤맨다고 말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비극적 통찰이다.
탐욕스러운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자신들이 살았던 행복했던 도서관을 버렸고, 각자 자신의 <변론서>를 찾으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층계 위로 내닫았다. 그 순례자들은 비좁은 낭하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고, 음험한 악담들을 지껄이고, 신성한 층계에서 서로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의 <변론서>로 잘못 알았던 책들을 터널의 밑바닥에 버렸고, 뒤이어 당도한 사람들에게 떠밀려 죽어갔다.(p137)
보르헤스는 이것을 헛된 욕망이라 말한다. 도서관에는 거의 무한한 책이 있지만 대부분 의미 없는 문자이다. 그래서 자신의 변론서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가능성에 집착한다.
도서관 속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이 있다. 첫째는 탐색자, 그는 진리의 책을 찾으려고 끝없이 이동하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변론서를 찾는 사람들, 그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는 책을 찾아 헤맨다. 셋째는 정화자, 쓸모없는 책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이다. 넷째는 절망한 사람들, 도서관의 무의미함에 자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보르헤스는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고독 속에서 이 아름다운 기다림으로 가슴이 설렌다."라고 쓰고 있다. 화자인 나는 찾지도 않고, 파괴하지도 않고, 그저 기다린다. 이 태도가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가장 지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의미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 뒤 존재를 긍정하는 인간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성경 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에서 그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교만해진 인간이 바벨탑을 쌓자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흩어버리는 이야기다.
온 땅에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1)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2)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을 돌로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3)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4)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6)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7)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8)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9)
바벨은 언어의 혼돈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세계가 미로 같고 혼돈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설의 주제를 다시 정리해 본다. 이 소설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으로 설정하여, 인간 존재와 지식의 한계에 대해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주요 주제는 우주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의미와 무의미의 공존, 절대적 진리에 대한 갈망과 좌절이다. 즉 '우주는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나 인간에게는 영원히 해석불가능한 미로'라는 것이다. 무한한 복제와 변주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고독을 도서관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을 통해 극대화하여 보여준다.
보르헤스(1899-1986)는 아르헨티나의 작가이다. 그는 오랫동안 도서관의 사서로 일했다. 유전적 결함으로 50대 후반에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시력을 잃은 후에도 시 소설, 에세이등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55년에서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일했다. 번역자인 황병하 교수는 작품해설에서 보르헤스의 작품집 《픽션들》,《알렙》은 푸코, 데리다, 움베르트 에코, 등 철학자,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20세기 후반의 모든 새로운 지성 사조인 독자 반응 이론, 후기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보르헤스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