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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정 Nov 30. 2023

내 마음속 보리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우리는 여행을 갔다. 같은 반 친한 친구 네 명이 의기투합해 일주일간의 남해 여행을 강행했다. 50여 년 전이다.


  한 친구의 고향이 남해였는데 그 친구가 남해는 금산과 보리암, 상주 해수욕장이 멋있다고 하며 우리를 부추겼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남해를 떠났지만, 삼촌 한 분이 남해에 살고 계시고, 삼촌 집은 마당도 넓고 방도 여럿 있는 집이니 숙식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자 형제가 많은 집 둘째 딸이었던 친구는 <작은 아씨들> 속의 ‘조’처럼 용감하고 생각이 앞서갔으며 조금은 엉뚱한 데가 있었다. 노는 일에는 특히 아이디어가 반짝였는데, 새 아이디어를 내면 계획까지 잘 세워 우리를 설득했고 우리는 즐겁게 그 아이의 말에 따랐다.  


  그런데 남해에 도착하여 삼촌과 숙모를 본 순간 우리는 낭패감에 빠졌다. 두 분은 갓 결혼한 신혼이었다. 그래도 새댁인 숙모는 큰댁 조카와 같이 온 친구들을 귀한 손님으로 반갑게 대접해 주었다. 안방을 내어주고, 결혼할 때 해왔던 귀한 비단이불까지 펴 주었다. 삼촌 역시 싱싱한 해산물을 사다가 식사 때마다 먹게 해 주었다.


  참 미안하고 염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며칠 그 집에서 머물다 금산 보리암을 향해 떠났다. 당시의 교통편으로는 삼촌 집에서 금산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남해는 큰 섬이고 삼촌 집에서 금산이 있는 상주까지는 꽤 멀었기 때문이다.


  저물녘에야 금산 아랫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한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부엌을 빌려 밥을 하고 김밥을 쌌다. 시골의 어둠은 무서울 만큼 너무 캄캄해서 우리는 환해지기를 기다려 길을 나섰다. 보리암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등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김밥으로 요기를 하고 몇 시간을 걸었다. 보리암 가는 동안 산에서 만난 건 나무와 하늘, 바람과 햇살뿐이다. 한겨울이고, 특별한 날도 아니었으니 기도하러 가는 사람도 등산객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리암은 아주 조그마한 암자였다. 스님 한 분과 부엌일을 하는 보살 할머니가 계셨다. 두 분은 사람이 그리웠는지 도시에서 온 여학생들을 무척 반겨주었다. 할머니는 당신이 쓰는 방을 내어주었는데 방바닥은 따끈따끈하고 방은 아늑했다. 보리암까지 오느라 새벽부터 고생이 많았고 전날 밤잠을 거의 못 자고 긴장했던 우리는 그 따끈한 방바닥에 누우니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는 것 같았다. 스님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새벽 예불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음에도 밤늦게까지 법당에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마당으로 나왔을 때 본 그 멋진 풍경은 난생처음으로 보고 느낀 경이였다. 보리암은 깎아지른 절벽 위 바위틈에 안겨 있었고, 마당에 서니 저 멀리 수평선 아래 남해가 보였다. 크고 작은 섬들과 호수처럼 잔잔한 푸른 바다, 상주 해수욕장 은모래 해변이 가까이 보이고 그 주변 마을이 평화롭게 있는, 참으로 눈부신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아침 햇살에 이 모든 풍경이 더욱 빛났다.


  스님이 금산을 구경시켜 주었다. 왜 금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는지 그때 알았다. 금산은 신라시대 때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절을 지었고 그래서 산 이름이 보광산이었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100일 기도 끝에 조선왕조를 개국하였고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 자를 써 금산이라 하게 됐다. 금산은 기암괴석이 많은 산이다. 스님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금산의 아름다운 봉우리, 바위들,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원효대사, 의상대사, 이성계가 기도했던 곳, 금산에서 가장 전망이 아름다운 곳을 보여주었다. 스님의 발걸음이 참 독특했는데 마치 춤을 추듯 사뿐사뿐 가볍게 걸음을 걷는 것이었다.


  그리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도 갑자기 눈이 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날리던 눈은 점점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높은 산을 다 덮을 듯이 눈은 펑펑 쏟아져 나뭇가지마다 눈꽃을 피웠고 세상은 하얗게 변해갔다. 깊은 침묵 속에 묻혀 있던 산이 눈으로 인해 깨어나서 반짝거리는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그 아름다운 변신에 우리는 동화 속의 겨울왕국에 온 듯 황홀해하며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몇 시간 후 눈이 그치고 눈에 점령당한 산은 다시 순백의 침묵으로 들어갔다.


  보리암에서 이틀 밤을 지내는 동안 우리는 밤늦도록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남해 금산이 원효, 의상대사와 관계가 깊어서인지 두 대사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모든 것이 사람의 마음에 기초하고 있고, 마음이 모든 존재의 근거라고 파악했던 원효의 일심 사상, 하나 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다는 의상의 철학이었을까?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질문하고 스님이 대답하면서 꽤 심각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사의 밤이 깊어갔다. 조용하고 아늑한 암자는 아름다운 산과 한 몸을 이룬 듯 산에 폭 안겨 있었다. 그때 보리암은 참으로 고즈넉한 산사였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보리암을 찾아갔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여 있어 차를 타고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20분도 채 걷지 않아 보리암에 도착했다. 이전에 그렇게 조용하고 아담하던 기도처는 웅장한 절집과 바다를 바라보는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이 찾는 복잡한 곳이 되어있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던 보리암이 사라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던 보리암은 마치 신비하고 은은한 색을 띤 고려청자와 같은 것이었는데 화려한 문양과 색깔을 자랑하는 중국의 자기가 된 것 같았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보리암만이 아니라 사람도 변했다. 열일곱 소녀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것들은 다 바뀌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보리암 그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남해 금산의 바위들이다. 그 절경은 그대로였다. 보리암을 찾는 사람들이 다 불교 신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금산의 기암괴석과 산 위 절벽에 서서 남해의 그 눈부신 풍경을 보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 같았다.


  살면서 오래 머물기도 하고 잠시 쳐 가기도 한 수많은 장소가 있다. 어떤 곳은 사라졌고, 어떤 곳은 변했고, 또 어떤 곳은 영원한 듯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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