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 그림 속의 청와대
1. 청와대.
청와대 개방 3주년을 앞두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가능성 관련 뉴스를 접하고 방문하였다. 방문 후 느낀 역사적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옛 그림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2. 청와대의 역사.
청와대 부지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숙종 때인 1104년 무렵으로 고려는 청와대 주변으로 추정되는 곳에 이궁(離宮)을 설치하고 남경(南京)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의 이성계가 개성에서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도읍을 천도(遷都)함으로 고려의 이궁(離宮)보다 남쪽에 경복궁을 건축하고 고려의 이궁(離宮)은 경복궁의 후원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왕과 신하가 함께 모여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며 충성과 단결을 맹세하는 회맹의식이 비정기로 개최하는 장소로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그 주변이 완전히 폐허가 된 후 270년 만에 고종 2년(1865)에 이르러서야 청와대 부지를 옛 경복궁 후원으로 중건되었다. 1868년에 이르러서는 창덕궁의 춘당지처럼 청와대 부지를 과거시험장의 기능을 하던 융문당, 군사훈련을 하던 융무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1869년부터 융문당, 융무당 일대가 경무대로 불리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5년 시정 5주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통치 20주년 기념하여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때 경복궁의 여러 전각과 더불어 경무대의 건물 대부분이 경매로 매각과 함께 철거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일제는 1939년 이곳에 조선 총독의 관사를 지었습니다.
1945년 광복 후에 경무대의 총독 관저는 미군정 사령관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혜화동 이화장에서 경무대로 거처를 옮기면서 건물 1층을 집무실, 2층을 관저로 사용하게 되었다. 옛 지명에 따라 경무대로 불렸다가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라는 명칭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고 하여 1961년부터 건물에 청기와로 덮여 있어 이름을 오늘날의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 후 박정희, 전두환 정권까지 일제 총독의 관사가 청와대로 이어지다가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청와대 본관 건물을 신축하였다. 현재 청와대 본관은 김영상 정부 때 완공되었으며 이전에 있던 구 청와대인 경무대는 철거되었다.
생각보다 청와대가 가진 역사는 서울의 각 궁궐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겨있다. 고려에서 조선이라는 왕조역사에서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수난기, 그리고 근현대 민주화에 형성기에도 청와대라는 역사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3. 청와대와 북악산(백악산).
경복궁과 청와대를 보면 바로 보이는 산이 바로 북악산이다. 북악산(北岳山)의 다른 말로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렀다. 북악산의 화강암을 백(白)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의 부유한 관원이나 사대부 및 문인들이 인왕산과 함께 북악산 기슭에 별장과 서재를 마련 하는 등 당대 서울의 명소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안중식의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는 1915년, 일제강점기 5주년 조선물산공진회 개최 당시 경복궁 철거 이전에 이왕가(李王家)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제목에 '춘효(春曉)'가 사용되었으나, 이는 봄날 새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봄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따라서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는 단순한 봄 아닌, 몰락한 왕조에 대한 안타까움의 심정을 담은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4. 녹지원과 상춘재, 독서당과 경무대(융무당, 윤무당).
녹지원은 120여 종의 식목들이 있는 정원으로 상춘재 아래에 펼쳐진 녹지이다. 녹지원의 반송은 대략 180년 정도 된 반송으로 녹지원의 터줏대감과 같은 나무이다. 녹지원을 쭉 한 바퀴를 걷다 보면 한옥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이 바로 상춘재(常春齋)이다. 상춘재(常春齋)는 한자 그대로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으로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귀빈들을 맞는 의전 및 비공식 회의장 등으로 사용된 곳이다. 일제 강점기때 상춘재는 총독 관저의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에 한옥으로 새로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오늘날에는 상춘재와 녹지원은 과거에 문인들의 별서(別墅)로 독락정(獨樂亭)이란 정자가 있었다. 아마 임진왜란 이후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며 지금은 소멸한 상태다. 그림으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그린 몇 그림이 남아 있다.
겸재가 그린 독락정(獨樂亭)을 보면 바위 사이에 조성된 계곡에 초가지붕의 정자가 있다. 독락정(獨樂亭)은 조선 후기 문신 김상헌의 손자 김수증이 지은 것이라 한다. 현재 대통령 관저 상춘재 사이에 굴곡진 바위와 계곡이 조성되어 있어 그 부분이 겸재가 그린 독락정(獨樂亭)으로 추정되거나 혹은 상춘재와 대통령 관저 사이에 백악산 등산로로 구간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부지가 앞서 말한 경무대라 말한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이 있던 곳이다. 경무대의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은 1929년에 조선박람회때 용산의 종교시설로 매각되었다가 해방 후 원불교에서 매입하여 현재는 전남 영암 원불교 시설에 옮겨져 있다.
겸재의 산수화와 과거의 사진만 보더라도 이 부지가 얼마 조용하고 큰지를 가름할 수 있듯 현재 청와대 녹지원과 상춘재도 조용하고 넓은 부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청와대 관저와 취미대.
대통령 관저는 1990년 노태우 정부 때 완공되었으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때 까지 대통령 관저로 활용되었다.
청와대 본관처럼 청기와로 장식된 기와집으로 궁궐건축기법으로 건축된 한옥 건물이다. 관저에 들어가기 전 관저의 정문인 인수문(仁壽門)이 보인다. 인수(仁壽)는 어질수록 장수한다는 뜻으로 어진 정치를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인수문(仁壽門)의 글자를 쓴 서예가는 초정(艸丁) 권창륜이라는 서예가로 83세까지 사셨다고 한다. 인서구로(人書具老)라는 말처럼 장수한 서예가가 쓴 글자이니 들어갔다 나오면 장수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취미대(翠微臺)는 취미(翠微)라는 한자 그대로 산의 중턱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진 취미대(翠微臺)에 대한 자료가 없지만 넓은 대로 수림(樹林)이 울창하여 오늘날 대통령 관저의 대지가 옛 취미대(翠微臺)로 추정하고 있다.
6. 청와대 본관과 회맹단.
청와대의 본관은 앞서 설명했듯이 노태우정부 때 건립하여 김영상 정부 때 완공되었다. 청와대 본관 1층은 국무회의를 주최하는 세종실과 임명장을 수여 및 기자회견과 오찬을 준비하는 충무실과 인왕실이 있다. 그리고 영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을 갖춘 무궁화실이 있다. 2층은 외국의 정상과 국빈을 맞이하는 접견실과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집무실로 구성되어있다.
과거 겸재 정선이 그린 옛 청와대는 회맹단(會盟壇)이란 단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후기 경복궁 신무문(神武門) 밖에 신하들의 공훈을 기록한 곳이 바로 회맹단(會盟壇)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이곳에 참여하여 회맹제(會盟祭)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경복궁의 후원으로 해당하는 이곳도 화마로 소멸하였지만, 정선이 살았던 조선 후기에도 회맹단(會盟壇)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 마무리.
이 밖에도 청와대는 침류각, 구 본관 터(수궁 터), 춘추관과 영빈관 등이 있으며 본관의 세종실, 충무실, 인왕실, 집무실 등 공간이 다양하게 있어 보는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한 번으로 구경하러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출입이 제한되기 전까지 자주 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