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의 사의(寫意)
1. 미산 허형(米山 許瀅)의 수묵
미산 허형(米山 許瀅, 1862~1938)은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의 넷째 아들로서 그에게 늦은 나이에 서화를 배웠지만, 소치만큼이나 서화에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소치(小痴)와 비교하면 서화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특히 미산이 왕성히 활던 했던 중년에서 말년기는 조선에 근대미술의 도래와 맞물려는 시기임으로 서화에 근대적 화풍이 미약하나 조금씩 표현되었다. 미산의 화풍은 고전화풍과 신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화풍은 아버지이자 스승인 소치에 비해 유려하면서 부드럽다.
2. 미산 허형의 괴석모란도(怪石牡丹圖)
이렇듯 미산(米山)의 화풍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지만, 이 괴석모란도(怪石牡丹圖)는 수묵의 묵직한 색감과 강렬한 필체가 돋보인다. 이 그림을 그릴 시기가 아마 미산이 남종화의 화풍을 수습하던 성숙기에 그린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모란을 둘러싼 괴석의 먹색이 과감하고 짙은 것이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괴석의 공간은 수묵의 농담을 습윤(濕潤)하게 쌓아 마치 수채화의 양감(量感)으로 처리한 것 같아 마치 눈 앞에 있는 괴석같은 입체감이 돋보인다. 더불어, 돌에 이끼가 층층이 쌓인 듯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그 위에 태점(苔點)을 처리하여 그림의 중량감까지 높여주고 있다. 또한, 윤곽선은 농묵(濃墨)보다 더욱 진한 탁묵(濁墨)으로 처리하여 괴석이 가진 기이함(怪)을 나타내었다. 이는 괴석이라는 사물을 면밀한 탐구한 결과물이자, 사물이 가진 의(意)를 빌려 용묵(用墨)을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란꽃의 경우 꽃잎마다 필세(筆勢)의 변화에 운필(運筆)로 처리하여 모란이 가진 풍성함을 나타내었다. 이는 서예적필선으로 원필圓筆)과 방필(方筆)을 통하여 옛 그림이 가진 고법(古法)의 이해와 더불어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는 필의(筆意)를 담아내었다. 꽃받침과 인접하거나 꽃잎이 겹쳐지는 부분은 농담(濃淡)으로 처리하는 등 미미하게 여백의 변화를 줌으로써 모란의 교태로움이 돋보인다. 꽃술을 진한 먹점(墨點)으로 처리하여 농담이 있는 꽃잎과의 대비를 통해 시각적으로 모란이 가진 풍성함을 시각적으로 모란의 풍염(豊艶)함을 더욱 돋보인다.
모란의 잎은 연한 먹색을 처리하여 꽃과 엽(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엽(葉)의 위는 진한 먹선으로 꽃잎의 필선처럼 서예적필선으로 잎의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다. 모란 가지는 상단부로 갈수록 간헐적인 단절이 관찰된다. 이는 과거 개화 후 고사한 모란의 흔적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의 모란이 작품의 주제임을 명확히 제시한다. 아울러, 가지 하단부의 새로운 모란 개화는 기존 모란의 고사와 마찬가지로 작품 속 모란의 유한함을 암시하며, 자연의 순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하여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3. 괴석모란도(怪石牡丹圖)의 화제(畫題)
마지막으로 그림의 화제는 “달의 정령과 눈의 넋이 구름 뿌리로 잉태되어 살찌고 향기로운 꽃 봄 들자 피어난다(蟾精雪魄孕雲亥 春入香涾一夜開).” 쓰여있다. 그림은 시의 내용과 다를 바 없이 어울린다. 이는 고법(古法)과 자연의 조화를 미산(米山)의 있는 그대로 화면에 구현한 것이다.
아울러 화제(畫題)는 날카로운 해서(楷書)와 유려한 행서(行書)를 혼용한 해행서(楷行書)로 쓰였는데, 이는 시가 감정의 변화를 표현하는 매체임을 참작하여 서체의 변화를 통해 시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행간의 간격은 일정하게 유지되나, 자간의 변화를 통해 해행서(楷行書)의 미묘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마치 그림 속 꽃과 괴석의 농담(濃淡) 조화처럼 서화(書畫)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의도이다.
4. 미산의 필의(筆意)
비록 미산(米山)의 특징이 나타난 시기에 그린 그림은 아니지만, 수목으로 모란이 자연성을 그대로 잘 나타내었다. 더불어, 모란이 가진 상징성을 장식적으로 꾸밀만한데 미산(米山)의 경우 서법(書法)과 용묵(用墨)의 고법(古法)으로 남종화의 필의(筆意) 담아내었다. 시대가 저물어가는 과정에서도 문인의 사의(寫意)를 저버리지 않았다.
참고문헌
동기창 지음, 변영섭 옮김, 「화안」, 시공사, 2003.
리쩌허우 지음, 조송식 옮김, 「화하미학, 중국의 전통 미학」, 아카넷, 2006.
강희안 지음, 이병훈 옮김, 「양화소록」, 을유문화사, 2000.
갈로 지음, 강관식 옮김, 「중국회화이론사」, 돌배게, 2010.
『안녕, 모란』, 국립고궁박물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