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잠들기 전,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질문을 남겼다.
2주 전 '인생관을 바꾸게 해 준 책이 있나요'란 질문에 최다댓글 2등을 하였다. 댓글이 쌓일 때마다 쾌감을 느꼈고 그렇게 인정욕구도 채워졌다. 그날 하루 최다댓글 탭을 많이도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 2주 만에 또 다른 질문을 올린 것이다. 뉴턴이 가장 많았던 것 같고 나머지는 크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처럼 잘난 척을 하기 위한 그다지 위대해 보이지 않는 인물도 몇 있었다.
질문은 답정너였다. 나는 한 인간을 기념하기 위해 공휴일을 만든 것은 예수님과 부처님뿐이며 이들보다 중요한 인물이 나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다윈이지 않겠냐고 적당한 타이밍에 댓글로 밝혔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인정 없는 나의 댓글 이후에 다른 댓글은 달리지 않았다. 잠들기 전 다시 한번 댓글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엄마의 대장암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검사결과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댓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깊은 잠을 잘 수 없었고(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하면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고 한다) 새벽에 한 번, 마지막으로 잠에서 일어나서 댓글을 확인하였다.
세상이 달리 보이는 아침이었다. 신의 피조물이라고 믿던 내가 고작 책 몇 권 읽고 나서 빅뱅을 얘기하고 최초 생명체를 얘기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같은 사이트 다른 글에서 분노를 표했다.
엄마는 긴장하고 있었다. 3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초음파에 물혹이 있었다. 엄마는 엄마의 몸을 확인받고 싶어 했고, 다른 병원에서는 CT를 찍어 문제가 없을 거라는 안심을 받아낸 상황이었다. 혹시 모르니 큰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고, 엄마는 그렇게 하겠노라 하고 검사 일정을 잡은 것이었다. 보호자 한 명과 같이. 보호자, 항상 엄마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렇게 쉽게 자격이 주어지는 신분인가.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아닌 상갓집에 가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하던데, 보호자의 주객전도에서도 내 나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5년 전, 대장암이 초기에 발견되었을 때도 엄마는 잘 이겨냈고, 이번에도 CT상에 문제가 없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엄마가 잘못된다는 것은 남들에게나 있는 일이었다.
내 또래의 여자 의사였다. 코가 어떻고 눈이 어떻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과 빨리 확인해 보죠."
분명 웃으며 인사했던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보자 미소를 거두고 잠시동안 말하지 않았다. 내게는 잠시였던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긴 침묵으로 느껴졌는지 침묵을 끌어내리고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은 거죠...".
구걸하는 목소리였다.
"제가 생각했던 모양이 아니네요."
의사는 다시 한번 사진을 보았다. 엄마와 나는 숨을 죽였다.
"패스트트랙으로 준비해 주세요."
어디론가 전화를 걸던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들어봤지만 일상에서는 듣고 말할 일이 없었던 '패스트트랙'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다시 검사를 빨리 해줘서 다행이란 마음보단, 그만큼 상태가 안 좋은 것인가 걱정이 먼저였다.
엄마가 앞에서 걷고 나는 뒤에서 걸었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자책했다.
'내가 또 잘못했구나. 또 엄마를 힘들게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내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은그릇에 물을 떠놓고 닭모가지를 비틀어 무릎을 꿇고 싶었다.
"의사가 여자고 젊던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엄마는 나름의 긍정적인 반전을 꾀했다. 나도 의사선상님이 경험이 부족해서 잘못 본 것이리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나는 출근을 했고 민원을 처리했다. 사람을 만나고 테니스를 쳤으며 밥알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엄마의 시선은 한 곳에 자주 머물렀으며 묻는 말을 지나치기도 하고 묻는 말에 다른 답을 내놓기도 했다. 반찬은 항상 같았다.
이번 보호자는 아버지였다. 엄마의 속을 꾀나 썩였던 아버지도 보호자가 될 수 있었다. 민원을 처리하고 주식창을 들락날락하던 나는 얼추 시간이 됐음을 확인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에는 걱정과 조바심을 담았다.
"괜찮대!!"
"잘됐네!"
길게 말하지 않았고 나도 길게 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성격처럼 검사결과는 싱거웠다. 의사는 경험도, 실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CT가 아닌 초음파 사진이기에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엄마가 잘못된다는 것은 남들에게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람은 누구인지. 고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는 다시 일상을 보냈다. 다시 나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책을 보았다. 하지만 드러내진 않았다. 누군가 쳐다볼 수 있으니까.
글을 갈무리하고 잠을 청했다. '카톡!'. 한때 친했던 오래된 친구의 아버지 부고였다. 성함 옆 '야고보'에 시선이 머물렀다. 분명 누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