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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다 숨었니? 찾는다?

by 조르바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할 때 리어카는 술래에게도, 숨는 아이에게도 숨고 찾기 좋은 장소였다. 보통 리어카는 벽면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숨는 아이에게는 사방에서 보이지 않는 안락함과 완벽함이 좋았고, 찾는 아이에게는 저 정도 공간에 한 명 정도는 숨어있을 거라는 추리력을 가능케 했다.

지금도 리어카를 보면 숨바꼭질을 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동시에 서윤이와 그녀랑 살던 그 집이 생각난다.('그'라는 대명사가 많이도 나올 것 같다.)

나는 5년 전 이혼하였다. 나의 이혼을 이리도 단순한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나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녀에 대한 부분은 최소화하고자 한다. 대명사 '그녀'에 국한하거나, 딸 서윤이에 대해서 말할 때 어쩔 수 없는 등장인물 정도로만 하겠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서윤이와 놀아주기에는 숨바꼭질만 한 것이 없었다. 술래를 바꿔가며 숨고 찾으면 시간이 잘도갔다. 서윤이가 자주 숨던 장소를 기억한다. 그 시절 리어카처럼 숨는 이에게도, 찾는 이에게도 모두가 좋은 통합의 장소였다.

그녀와 헤어진 후 짐 정리를 하러 그 집에 갔다. 그 집으로 가기 위한 주차장, 엘리베이터, 복도를 지나면서 수많은 상념과 마주했다. 나의 시선은 자주 한 곳에 머물렀으며 그럴 때마다 내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발 디딛는 곳마다 서윤이의 웃음이, 눈물이, 성장이 있었다. 발 디딛는 곳마다 나의 눈물이 있었다. 서윤이가 공간 공간에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떠다녔다. 나는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고 떠다니는 서윤이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 시선이 발치에 닿으면 짐을 정리하였다.

숨바꼭질할 때 서윤이가 자주 숨던 안방 문 앞에 다다르고 내 발걸음과 시선은 멈췄다. 택견 하는 사람처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내 몸을 놀려 문을 열고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깔깔거리고 웃고 있어야 할 서윤이는 더는 그곳에 없었고, 우리의 숨바꼭질을 지켜보며 미소 짓던 그녀도 없었다. 그곳엔 너절한 회한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혼에 대해 밝히면서 첫 소재가 '숨바꼭질'이다. 이혼숙려 시기부터, 아니 그전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 때부터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나 보다. 내가 숨고 싶을 때마다 술래인 서윤이가 나를 찾았고 나는 계속 숨어있을 수 없었다.

나는 세상에 나왔다. 이번엔 내가 술래가 돼서 서윤이와 나의 행복을 찾아다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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