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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조르바

엄마는 초졸이다. 중졸인 줄 알던 내게 엄마의 학력위조는 충격이었다.

"창피하니까 그랬지!"

큰소리쳐서 황당함마저 안겼다.


20대 중반 어느 날, 화를 내던 엄마에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를 시전 했다. 누구 시인지 아냐고도 물었다.


"푸쉬킨 아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나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주변의 장면을 물리고, 집안의 물건들이 저만치 멀어지고, 엄마의 무대가 솟아오르고, 엄마는 나직이 읇조렸다. 한줄기 빛도 보였던 것 같다.

미소는 짓지 않았다. 분명 수줍어했다.

엄마의 시낭송이 끝나고 집안의 물건들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엄마를 비추던 거울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사춘기 때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엄마의 학력위조를 용서했다.


그리고 엄마의 지난한 삶을 생각했다. 엄마를 기만한 삶은 무엇인가. 나도 엄마에게 상실을 주었는가. 엄마를 슬프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

짜장면 한 그릇 못 읃어먹고!스물두 살에 시집와서 어! 산에서 밤에 짐승들이 울어대는데 누에 치고! 돼지 맥이고! 옥시기 내다 팔고! 중풍 든 니 할아버지 똥수발 다 들고! 이날 여지껏 고생했는데 이제 와서 그년들이 나한테 이래!!! 엄마의 절규를 떠올렸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눈치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서윤이를 보며 나는 마지막행에 집중한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서윤이의 지난날이 그립고 아득하다. 그러나 현재가 우울하지는 않다.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너는 무엇을 원하였나.'

'나는 무엇을 원하였던가.'


"이뻤어. 너는 니 할아버지처럼 두부랑 비계를 좋아했어. "

"예뻤어. 예뻤단다. 너는 아빠처럼 두부랑 비계를 좋아했단다. "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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