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겨루기
"아빠, 맹세가 뭐야?"
"맹세? 음.. 약속을..". 말문이 막힌다. 서윤이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깜빡이고 있다. 포털사이트를 뒤져 맹세를 누른다.
'맹세: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그래, 이거야.
"그럼 실행은 뭐야?"
"실행? 실행은.. 하는 거지.. 실행은.. 옮기는 거지~"
(오은영박사님이 보고 싶다.)
요즘 서윤이는 단어를 배우고 있다. '우리말겨루기'도 시청한다. 월요일 저녁이면 우리 네 식구는 TV앞에 어떠한 정형 없이 모여있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떤 지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는 모른다.
나도 단어를 배우고 있다.
죽기 전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다. 책을 읽어보니 글을 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들이 있는듯하다.
'사위다, 지난하다, 경멸, 부침, 달싹이다, 주억거리다'
느낌이 좋고 리듬감이 좋은 단어를 익힌다. 예전에는 중얼거렸지만 이제는 달싹여본다. 이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쳤다면 이제 주억거려 본다. 글을 쓴다.
단어와 단어가 만나서 리듬이 생기고, 그 일렁임 속에서 화음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 안에서 춤을 추고 뛰어논다. 때로는 신나는, 때로는 슬프고 위로가 되는 노래를 한다. 글에서 의미가 만들어지고 의미를 나누고 의미는 더해간다. 누군가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누군가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어떤 이는 꿈을 꾼다. 더 신나게 춤추기 위하여, 더 아름답고 따듯한 노래를 만들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단어를 배운다.
내가 글을 쓸 줄이야. 신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