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Dutoit -샤를 뒤투아 (1) -
상하이 심포니와의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직장 동료들과
farewell party를 할 때 바순 수석인 Tim이 나에게 물어봤다.
“JJ! 네가 지난 9년간 했던 모든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샤를 뒤투아와의 모든 공연. 그중에서도 2016년 어미거위 모음곡 마지막 악장에서 내가 연주했던 잉글리쉬 호른의 첫음은 그 이후로도 어쩌면 내 남은 인생 전체에서 해내지 못 낼지도 몰라 “
당시 뒤투아는 전 세계에 몰아닥친 미투운동으로 인해 서구권 메이저 악단과 거의 다 손절이 된 상황이었다. 지금에서는 모두 무혐의가 되긴 했지만 그 당시엔 정말 갈 곳 없는 외로운 상황이었는데 이미 오랜 시간 SSO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던 뒤투아를 SSO는 오히려 ‘기회’로 삼아 쉽게 도전하지 못할 레퍼토리를 매년 올리고 있던 시기였다.
예를 들어 리허설 3일 하고 이틀간 연속으로 협주곡, 말러 1번, 불새 전곡+어미거위 모음곡 같은 하드한 구성으로 연주를 한다던가, 살로메 전곡을 올리기도 , 좀 있다가 다시 언급할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전곡으로 중국 투어를 하는 등 매년 뒤투아는 상하이에 등장해 그의 예술혼을 완전 불태워버리고 가던..ㅎㅎ
뒤투아의 첫인상이 아주 아름다웠던 건 아니었는데, 이유인즉슨 그가 그다지 주요 레파토리로 하지 않는 말러 교향곡을 딱 세 번 리허설만에 해치워버렸어야 했기 때문..;;;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본인이 꽂힌 어떤 뉘앙스는 죽어도 해결해야 넘어가는 분이라 첫날부터 3일 동안 말러 1번 4악장만 리허설을 하는 것이었다!
앞에 언급했다시피 이틀 동안 완전히 다른 레퍼토리를 했어야 하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동안 리허설 스케줄을 잘 분배했어야 하는데 3일 중 말러에 한해서는 4악장만 주야장천 하더니 연주 당일에 가서야 1~3악장 general rehearsal로 후루룩 해치우고 나선 연주를 해버렸다. (연주는 그럭저럭 망했다. 그토록 붙잡고 늘어지던 4악장조차 별로였음)
그런 그였기에
‘명성과 실력은 역시 별개로군..’ 하며 지나갈 뻔했는데
본인의 진짜 최고장기인 프랜치 뮤직, 그중에서도 라벨의 지휘봉을 들게 되니 뒤투아의 진짜 모습을 느끼게 해 주었다.
(놀랍게도 말러 연주 다음날은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그와 함께 한 모든 작업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슬렁슬렁 지휘하는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데 이미 나는 그의 지휘봉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는 결코 솔리스트를 쳐다보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경외하며 바라볼 뿐‘
이 세 가지였던 것 같다.
특히 어미 거위 모음곡 5악장 “마법의 정원”에서 내가 연주한 첫음에서 나는 정말 뒤투아의 지휘봉 끝과 첫 텅깅을 하는 내 혀끝이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완전한 커넥션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거의
없다. 오직 딱 두 번인데 그 두 번 모두 뒤투아와 함께한 순간이었다.
(Youtube Link: https://youtu.be/xuyWIxNFGPo?si=YBDLiHWNLyvvwxH3)
또 한 번은 파우스트의 겁벌 공연에서였다.
전 시즌에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을 마치고 백스테이지에서 뒤투아가 나에게 따로 찾아오더니
“다음 시즌에 파우스트를 할 거야. 너의 역할이 중요한 거 알지? 준비 잘해와.” 라며 떠나버린 이 할아버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저 곡을 잘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할아버지 칭찬도 참 독특하게 하네..‘ 하며 넘어갔는데..
(2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