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는 고민 상담"
고민 상담은 대개 지혜와 경험이 있고,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받게 된다. 나보다 삶의 경험이 많고, 나보다 성공하고, 나보다 똑똑한 사람에게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조언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동네 잡화점 주인인 나미야 할아버지에게는 연륜과 섬세함이 있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한 표현을 빌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쥐어짜” 쓰는 답변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따뜻함과 연륜이 담긴 혜안이 담겨 있어 상담자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조언자가 인생의 모든 답을 알려주지는 않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다. 조언자는 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평생 나를 봐온 나도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데, 내 입으로 나온 고민을 듣고 조언자가 나를 온전히 알 수 있겠는가. 평생 감시해 온 도깨비라면 모를까, 어떤 누구도 나에 대해 모르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의 얘기를 듣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진실이었던 명제가 나에게는 틀린 답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똑같은 조언을 들어도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고민 상담은 미묘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얻기도 하지만, 오히려 미숙하고 결점 투성이인 ‘빈집털이 세 젊은이’와의 대화에서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 젊은이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글을 쓸 줄도 모르며 인생의 궁지에 내몰려 쫓기고 있다. 더군다나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스른 다른 세대의 사람이다. 등장인물들은 이들을 나미야 할아버지라고 착각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어느샌가 다른 사람임을 직감하지만, 이미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용기를 낸다.
고민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거짓 없이 스스로를 마주 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각종 방어기제들이 무의식 속에서 나를 보호한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은 마음, 그런 윤리적 혹은 사회적 족쇄들로부터 벌거벗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는 종종 우리의 눈을 가린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런 방어기제에 더욱 취약하다. 감정적 스트레스, 불안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논리적인 사고를 생략하고 현실을 외면하거나 그릇된 결과에 도달하기 쉽다. 머릿속의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혹은 편지와 같은 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가 필연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방어기제가 설 자리는 줄어든다. 타인에게 내 고민을 설명하기 위해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누구 건 간에 말이다. 따라서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임한다면, 누구나 상담가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담이란 누군가에게 정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고민들은 그 안에 답이 있고, 어떤 고민은 길이 그려져 있지 않은 백지의 지도와 같다. 옳은 길을 찾고, 없는 길을 지도에 그려나가는 것은 스스로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답을 해결해 주려 하기보다 진지하게 경청하자. 함부로 판단하려 하지 말자. 가만히 듣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 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마지막 편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