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길이 돌아오는 법: <연의 편지>

Movie Review

by 정근우


영화의 오프닝은 묘하게 낯익고, 동시에 낯설다.


따뜻한 색감과 투명한 빛의 결은 '너의 이름은', '초소 5cm'를 만든 신카이 마코토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프레임 안을 채우는 건 분명 한국의 공기다. 서울의 빌딩숲과 한강을 가르는 대교, 한글이 적힌 표지판을 따라 푸르른 논밭을 가로지르는 기차, 시골 할머니 집. 일본식 작화의 언어로 번역된 한국의 풍경은 이질감보다 신선함을 낳는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다정하게.


학교의 풍경은 한층 더 기묘하다. 교내에 마녀의 정원이 있고, 토끼장이 있고, 작은 연못과 숲 속에 버려진 버스까지. 현실의 학교와 상상 속 정원이 얇은 막 하나로 겹쳐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공간은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 확장된다. 불안이 커질 때는 덤불이 우거지고, 누군가의 용기가 싹틀 때는 햇살이 슬며시 드리운다. 웹툰에서 영화로 건너온 세계가 가장 선명하게 달라지는 지점도 여기다.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는 배경을 하나의 정서로 밀어 올린다. 마녀의 정원과 김순이 경비원을 마법적으로 묘사하는 순간들은 판타지의 문장을 빌려오고, 이내 교실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이 그 문장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마법과 현실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묘사한다.








<연의 편지>가 가장 오래 남기는 것은 '관계의 연쇄'다. 누군가에 대한 작은 구원이 또 다른 구원의 시초가 되고, 그 구원은 다시 처음의 누군가를 되살린다. 전학을 가기 전, 소리는 지민을 구원했고, 이를 통해 지민은 다른 학교에서 또 다른 학생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통해 소리는 지민에게 용기를 얻는다. 전학 간 학교에서, 소리는 호연의 편지로 상처를 극복하고, 동순은 호연에게서 받은 상처를 소리와 편지를 통해 천천히 꿰맨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에는 어린 시절, 병약했던 호연에게 건넨 소리의 작은 손길이 있었다. 한 사람이 내민 손이 또 다른 사람의 힘이 되고, 그렇게 생긴 힘이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향한 작은 호의는 여러 사람을 거쳐 커져가고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다. 영화는 그 단순한 진리를, 느리지만 정확한 타이밍으로 반복해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불현듯 <진격의 거인>이 떠오른다. 둘을 같은 무게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하나는 교실의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 단위의 파멸이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선택한 '연쇄'의 방향은 정확히 반대다. <진격의 거인>이 복수와 폭력의 연쇄가 끝내 무엇을 파괴하는지를 냉혹하게 보여준다면, <연의 편지>는 호의의 연쇄가 어떻게 사람을 살려내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손길은 또 다른 손길을 부른다. 확장되는 방식은 닮았으나, 도달하는 세계는 다르다.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오늘, 어느 연쇄에 손을 보탤 것인가.












그래서 이 영화는 판타지일까? 김순이 경비원의 기이한 기척, 호연의 능력, 사람을 찾아가는 반딧불이까지. 마법적 이미지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해답이 아니라 표지판처럼 작동한다. 갈등을 푸는 열쇠는 결국 사람에게 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간, 한 줄의 안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용기. 영화는 마법을 빛으로만 쓰고, 길을 선택하는 일은 끝내 등장인물들의 몫으로 남긴다.


웹툰을 먼저 읽었던 관객이라면, 영화가 선택한 몇 가지 묘사의 변화가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원작을 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경과 분위기를 통해 '편지'의 온도를 체감하게 만든다. 바람이 불어 불어 나뭇잎이 뒤집히는 순간, 복도 끝 창틀에 고인 작은 물웅덩이, 교문 앞의 노을 같은 사소한 것들이 화면 가득 채워져, 인물들의 감정에 서서히 색을 입힌다. 손바닥만 한 웹툰 화면에서 훌쩍 커진 감정의 입자가, 어두운 상영관에서 더 천천히, 더 깊게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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