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귀멸의 칼날: 무한성”
최근 일본 만화는 강렬한 자극이나 기존 클리셰를 비트는 작품들이 주목받는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칼을 다루는 전통적인 소년 만화, 정석적인 성장 서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부동의 1위작 이었던 '원피스'를 제치고 누적 판매 부수 정상에 올랐다.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만화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애니메이션화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귀멸의 칼날은 점프 연재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애니메이션화의 방영을 기점으로 만화의 인기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20년 개봉한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는 원작 만화로는 전해지기 힘든 액션의 박진감, 인물들의 감정선을 화려한 영상미와 웅장한 음악으로 재현해 낸 덕분이었다. 제작사인 ufotable 특유의 압도적인 작화와 연출이 작품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여기에 캐릭터들의 뚜렷한 가치관과 입체성이 더해져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번 '무한성'편은 ufotable의 모든 역량이 응집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렌더링(3DCG) 작업을 위해 초고성능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ufotable의 모든 직원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압도적인 영상미와 역동적인 액션에는 제작진의 고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만 독립된 영화 한 편으로 보기에는 서사적으로 다소 단조로울 수 있다. 몇몇 상현과의 전투 그리고 과거회상이 전부이고, 까마귀는 무잔을 찾기만 하다 영화가 끝난다. 하지만 삼부작으로 이뤄지는 시리즈의 서사를 쌓는 첫 작품으로 본다면 나쁠 것 없다. 악역 캐릭터에 대한 몰입, 긴장감 넘치는 전투와 생생한 세계관의 구현만으로도 충분한 몰입과 감동을 선사한다.
시대를 풍미하는 소년 만화에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교훈과 철학이 담겨있다. 이는 다른 나라보다 일본 만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진격의 거인', '강철의 연금술사' 등과 비교하면 작품의 철학적인 깊이는 덜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귀멸의 칼날’의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애’다. 작품의 첫 장면부터 "이것은 가족의 이야기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탄지로가 혈귀가 된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다른 인물들 역시 지켜야 하거나, 혹은 지키지 못했던 가족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주인공의 호기심이나 야심이 아닌 가족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극을 끌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흥미롭게도 혈귀들 또한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혹은 그 상실과 비극을 계기로 혈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어느 시대, 혹은 어느 세대에 있어서나 보편적인 감정을 이끌어 낸다. 이 대칭적 서사가 독자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에서 개봉된 무한성편의 부제는 ‘아카자 재래’였다. 이번 영화의 핵심이 그의 서사임을 보여준다.
2020년 '무한열차'편 개봉 이후 염주 렌고쿠를 죽이고 비겁하게 도망쳤을 때만 해도 그는 만인의 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개봉 이후, 많은 팬들이 상현 3 아카자에게 열광한다. 여전히 아카자는 수많은 무고한 사사람을 죽인 악역이고,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미움받던 인물이 어떻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아카자의 매력은 모순적인 신념 속에 깃든 순애에 있다. 그는 인간 시절,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던 사람을 두 차례나 잃었다. 강함이 사랑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지만, 그의 친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결혼을 앞둔 여인은 우물에 푼 독에 숨졌다. 무투가로서, 그는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그 상실은 그의 가치관을 뒤흔들었고, 강함 자체가 목적이 되는 기형적인 집착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집착조차 사랑의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다.
혈귀가 된 이후에도 그는 잊지 못했다. 기술의 형상을 사랑하는 이의 비녀에서 본땄고,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불꽃놀이를 자신의 기술 안에 새겨 넣었다. 기억을 잃었어도, 그리움은 몸과 기술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흔적인 독자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카자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절제된 악역이라는 점이다. 그는 혈귀가 된 후에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식인만을 했으며, 특히 여성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설정이 있다. 다른 혈귀들이 힘을 얻기 위해 무분별하게 식인을 거듭하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그는 끊임없이 수련하며 강해졌다. 강해지기 위해 타인의 생명을 제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단련해 얻은 힘이었다. 이 점은 그를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정통적인 노력형 캐릭터로 만들어 주었다.
“그래, 약자란 역겨워. 토 나와. 도태되는 건 다름 아닌 자연의 섭리지.”
아카자는 오로지 강함만을 존중하고 약자를 멸시한다. 그는 쿄쥬로를 죽이며 슬퍼했고, 무시하던 탄지로가 강해지자 공손하게 태도를 바꾸며 대화하려 시도한다.
강함에 대한 아카자의 집착은 과거 회상을 통해 그 원인이 밝혀진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그는 무투가로서 단 한 번의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잃었다. 그의 인생에서 강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목적을 잃은 그는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강함 자체를 목적화한다. 상처를 직면하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외적인 힘만을 병적으로 추구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결국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외면하고 과거에 도망 다니면서 잘못된 신념을 더욱 굳건히 쌓아갔다. 그러다 끝내, 탄지로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고 끝내 깨닫는다. 가장 약한 존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성불하여 스스로 사라진다.
아카자는 분명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잊지 못한 순애, 절제된 식인, 노력으로 쌓은 힘,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성불하는 모습은 그를 단순한 괴물이 아닌 비극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관객은 이런 캐릭터 앞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미워해야 하지만, 동시에 연민이 스며든다. 이것은 마치 범죄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도 닮아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듯, 우리는 잔혹한 악역 아카자에게조차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며 묘한 애정을 느낀다.
아카자는 잔혹하면서도 순수하고, 절제하면서도 집착하며, 괴물이면서도 인간적이다. 이 복합성이 그를 가장 매혹적인 비극적 악역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아카자는 단순히 미워해야 할 악역을 넘어, 상처와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비극적 인물로 우리 마음 한구석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