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노인과 바다: 바다를 마주 서는 자리에서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1952

by 정근우

문을 열고 나와 짭짜름한 바람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다

몇 걸음을 옮기면 대한민국 최남단의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일렁이는 윤슬은 어제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매일 다른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존재

익숙하면서도, 그래서 더 낯설고 새로운 바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는 대개 휴양지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파도가 조금 더 치거나, 덜 칠 뿐, 대체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바다를 오래 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어떤 날의 바다는 반짝이는 햇살을 머금고 한없이 따뜻해 보이다가도

또 어떤 날의 바다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두렵게 느껴진다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는 약 1만 미터를 넘지만, 인간이 맨몸으로 내려갈 수 있는 깊이는 최대 100m에 불과하다.

그 아래 깊은 곳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자, 어쩌면 공포의 공간이다.

문학과 영화 속에서도 바다는 극적으로 묘사된다. 고전 소설 <모비 딕>에서는 공포와 집착의 대상으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만화 <원피스>에서는 낭만과 꿈의 무대로 그려진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노인과 바다>는, 그런 바다 한가운데에 홀몸으로 내던져진 한 사나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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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인과 바다> 줄거리

이야기의 배경은 쿠바 연안이다. 이곳에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가 있다.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낡은 배를 띄우고 바다로 나간다. 그날, 그의 낚싯대에 배보다도 길어 보이는 거대한 물고기가 걸린다.

노인은 꼬박 2박 3일 동안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인다. 녹초가 된 끝에 마침내 그 거대한 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너무 먼 바다까지 나왔던 탓에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난다.

부두에 가까스로 돌아왔을 때, 한때 장대한 고기였던 것은 이미 살점이 다 뜯긴 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130쪽 남짓한 중편 분량, 인물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짧고 소박한 이야기 하나로, 헤밍웨이는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다.



2. 삶과 싸우는 자세, 인간의 존엄성

소설은 노인의 육체를 이렇게 묘사한다.

두 눈을 제외하면 노인의 것은 하나같이 노쇠해 있었다.
오직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

나이 든 몸, 굽은 어깨와 깊게 팬 주름. 하지만 그의 눈만은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던 젊은 날의 광채를 간직하고 있다. 또 다른 장면에서 작가는 말한다.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그의 어깨에는 아직도 이상하리만큼 힘이 흘러넘쳤다.

몸은 늙어가는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 흐르는 의지와 힘은 쉽게 닳지 않는다.


소설의 유명한 문장,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그를 가장 잘 요약하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노인은 결국 상어 떼에게 고기를 빼앗기고, 빈 배로 돌아오다시피 한다. 그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놈들한테 내가 졌어, 마놀린. 놈들한테 내가 완전히 지고 만 거야." 노인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그렇지. 정말 그래. 내가 진 건 그 뒤였어."

패배는 결과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는 끝까지 물고기와 싸웠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인간이 벼랑 끝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끝까지 버티는 힘, 부러질지언정 쉽게 구부러지지 않으려는 태도. <노인과 바다>가 말하는 존엄성은 거창한 승리의 찬가가 아니라, "그래도 나는 내일을 한다"라는 고집에 가깝다.

인간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3. 우린 어부들이니까: 직업과 정체성

노인의 입에서 인상 깊게 남는 말 가운데 하나는 이 대사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신념이 있지... 우린 어부들이니까."

노인이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 때문만도, 명예 때문만도 아니다.

그는 그저 어부이기 때문에 바다로 나간다.


정어리 미끼를 건네받았을 때, 노인은 농담처럼 묻는다.

"설마 훔친 건 아니겠지?'

복권을 살 돈 2달러 50센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이렇게 말한다.

"아마 돈을 빌릴 순 있을 거야. 하지만 난 될 수 있으면 돈을 빌리지 않고 싶구나. 처음엔 돈을 빌리지. 그러다 나중엔 구걸하게 되는 법이거든."

그의 말속에서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품은 그릇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20세기 중반, 노인에게 '어부'라는 직업은 곧 자기 자신과 분리되지 않는 정체성에 가까웠다.

반면 오늘날 우리는 직업을 자주 '갈아탈 수 있는 것', '수단'으로 이야기한다. 일이 곧 나 자신을 정의하는 시대는 끝났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할 때, "이 일을 위해 내가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본 적이 언제였을까.


노인의 고집스러운 태도는, 우리에게 묻는다

직업과 정체성을 연결시키는 일은 더 이상 낡은 생각일까,

아니면 여전히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감각일까.



4. 사자, 그리고 소년: 노인이 끝까지 붙든 것들

소설 속에서 노인은 사자가 나오는 꿈을 세 번 꾼다.

(1)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날의 꿈

노인의 꿈에는 이제 폭풍우도, 여자도, 큰 사건도, 큰 고기도, 싸움도, 힘겨루기도, 그리고 죽은 아내의 모습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러 지역과 해안에 나타나는 사자들 꿈만 꿀뿐이었다. 사자들은 황혼 속에서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뛰어놀았고, 그는 소년을 사랑하듯 이 사자들을 사랑했다.

(2) 바다에서 큰 고기와 사투를 벌이던 중

노인은 사자 꿈을 꾸지는 않았으나 그 대신 13킬로미터에서 16킬로미터가량 퍼져 큰 무리를 이룬 돌고래 꿈을 꾸었다.... 그러고 나서 마을의 자기 침대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그런 다음 노인은 길게 뻗은 노란 해변이 나오는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사자 한 마리가 이른 새벽 어두컴컴한 바닷가로 내려오더니, 이어 다른 사자들도 뒤따라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자가 나타나지는 않는지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기분이 자못 흐뭇했다.

(3)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후

길 위쪽의 판잣집에서 노인은 다시금 잠이 들어 있었다.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고, 소년이 곁에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자는 강인함과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노인이 이 꿈을 꾸는 시점은 하나같이 희망적이지 못한 순간들이다.

첫 번째 꿈에서, 노인은 오랜 기간 물고기를 잡지 못해 동네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꿈속에서는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이 사라지고, 그저 새끼 사자들과 뛰논다. 이때의 사자는, 노인에게 삶을 대하는 자세, 혹은 다시 일어서는 투쟁의식을 의미하는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노인의 꿈에도 사자가 나타난다. 상황만 놓고 보면 충분히 절망에 빠져있을 만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태도로 사자를 떠올린다. 그의 몸은 상어와의 싸움으로 지쳐 있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아마 또다시 사자 꿈을 꾸고, 언젠가 다시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는 어부이고, 그는 인간이기 때문에 끝없이 살아가고, 끝없이 투쟁하는 존재다.



또 하나, 이야기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존재가 바로 소년 마놀린이다.

노인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혼잣말처럼 되뇌인다.

"옆에 그 애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애가 지금 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지금 그 애가 내 곁에 있고, 또 소금이 조금 있으면 좋으련만."

소년은 노인에게 단순한 조수가 아니다. 그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작은 공동체의 상징이다.


소설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 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이 '고독한 투쟁의 서사'를 넘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대한 바다와 싸우는 인간의 모습 뒤에는, 늘 나를 기억해 주는 한 사람, 나를 '패배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

그게 어쩌면, 노인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바다를 본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거대한 바다와 마주 서서, 자신의 한계를 마지막까지 밀어붙인다.

결국 손에 쥔 것은 고기의 뼈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패배조차 품위 있게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도 매일 저마다의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운다.

아무것도 얻은 게 없고, 얻은 것마저 잃는다 할지라도, 내일 다시 배를 띄운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을 떠올린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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