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3: 불과 재 - 가족, 연결, 그리고 에이와

[영화리뷰] 아바타 3: 불과 재 - 연결의 의미를 묻다

by 정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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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향상된 기술력으로 펼쳐진 판도라의 세계. 2편에서 바다 생물들의 황홀한 광경을 선사했다면, 이번엔 그 경이로움을 하늘로 확장합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 상인들의 비행장면은, 바닷속 생명들의 유영을 광활한 공중에 뿌려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거대한 툴쿤들의 장로회의 장면에서는, 화면 가득 차오르는 중후한 무게감과 장엄함이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3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재의 민족'이 만들어내는 불과 물의 시각적인 조화가 더해지며, 판도라의 풍경은 또 한 번 새로운 결을 얻습니다.


하지만 3편이 남기는 인상은 비주얼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야기 속에 촘촘히 깔린 주제의식은 '가족', '연결', 그리고 '에이와'라는 키워드로 모아볼 수 있습니다.



1. 가족의 의미, 그 경계를 넘어서

영화는 두 가지 가족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피로 연결된 '쿼리치 대령과 스파이더', 그리고 정으로 얽힌 '제이크 설리와 스파이더'. 무엇이 진정한 가족일까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다문화 가족, 입양 가족이 증가하며 각자가 정의하는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지요. 그럼에도 유전자를 공유하는 핏줄의 무게는 여전합니다. 이산가족의 재회가 눈물을 자아내고, 갓 태어난 자식을 향한 모성애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아바타 3>는 이러한 질문을 방대한 서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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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대감,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연결

"설리 가족은 항상 함께 해(Sullys stick together)." 설리 가족의 제1 가훈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역설적으로, 가족의 단절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 장남 네테이얌의 죽음. 그 비극 이후 가족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차남은 형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혼자 하늘을 날고, 어머니는 종교에 귀의하며, 아버지는 바쁜 일상으로 슬픔을 잊으려 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이겨내려 하지만, 삶의 방향이 엇갈리면서 가족은 점점 더 분열됩니다.


이러한 분열은 영화의 흐름을 타고 서서히 이해와 화해로 나아갑니다.

그 연결은 혈연으로 이어진 설리 가족을 넘어 인간의 몸을 가진 스파이더로 확장되고, 토루쿠 막토를 중심으로 한 부족 간의 연대로 이어지며, 키리를 매개로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의지를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연결은 심지어 적대관계에 있던 이들 사이에서도 싹틉니다.

스파이더를 사이에 둔 쿼리치 대령과 제이크 설리는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서로의 부성애를 의식하게 됩니다.


<아바타>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은 '연대감'과 '연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의 결말은 인간과 나비족,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가 아닌 판도라 행성 속 두 종족 간의 공생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조심스럽게 해 보게 됩니다.



3. 입체적 인물과 평면적 인물 사이

<아바타>에서 감독이 의도한 선과 악은 명확합니다.

나비족은 성스러운 의식, 자연주의, 생명 존중의 태도로 선을 상징합니다.

반면 인간은 탐욕과 파괴, 욕망으로 철저하게 악으로 그려집니다.


인간에게도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있을 텐데, 영화는 그런 복잡한 맥락을 깊이 다루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지구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저항 정신 대신, '언옵타늄'과 '암리타'라는 고가의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고 고래 포획을 하는 욕망적 행위를 부각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나비족이 학살당할 때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전쟁에서 인간들이 죽어나갈 때 역설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같은 인간이 파멸하는 장면에서 느끼는 이 묘한 배덕감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감정 구조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 캐릭터는 이렇게 선과 악이 분명히 갈리지만, 쿼리치 대령만큼은 예외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분명 이야기의 빌런입니다.

하지만 스파이더와의 관계를 통해, 처음과는 다른 얼굴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편에 있으면서도 때로는 인간 지휘부와 대립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나비족 망콴 부족과 협력하기도 하며, 스파이더를 위해서라면 적대 관계인 설리 가족을 돕기까지 합니다.


쿼리치는 여전히 잔혹하고 폭력적인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만은 서툰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거부하는 스파이더를 바라볼 때 그의 표정에서는, 빌런이라기보다 어딘가 외롭고 안쓰러운 인간적인 모습이 엿보입니다.


쿼리치 대령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선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그가 '악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잇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어떤 아버지로 남을 것인지'를 끝까지 지켜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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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균사로 소통하는 판도라, 그리고 지구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물들은 교감합니다.

수천억 그루의 나무들은 뿌리로 서로 촘촘히 얽혀 방대한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마치 광케이블로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처럼, 판도라 생태계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망처럼 느껴집니다.

포유류는 머리 뒤의 촉수(쿠루)로, 식물은 뿌리 덩굴로 의사소통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것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구의 나무들도 균류와 결합한 잔뿌리(균근 네트워크)를 이용해 서로 의사소통합니다.

이 뿌리 네트워크는 일종의 인지체계처럼 작용해서 옆에 있는 나무가 같은 종인지, 어린 나무인지 알아챕니다. 가까이 있는 나무가 아프거나 죽어가면 다른 나무들은 그쪽으로 당분과 영양을 보내기도 합니다. 나무에게도 일종의 기억이 있으며, 이를 후손에게 물려주기까지 합니다.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정보와 기억, 양분이 공유되는 거대한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판도라의 생태계 설정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에이와가 스파이더를 받아들인 이후, 그는 판도라의 공기에 '적응'합니다. 과학자들은 스파이더의 몸이 균사체와 공생 관계를 이루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인간의 몸이 일종의 '식물화'를 겪으며 주변 환경과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 단계를 거쳐 스파이더는 인간을 넘어 새로운 종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과 균사체의 공생 관계는, 인간과 나비족, 더 나아가 인간과 판도라 행성의 공생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보입니다.



5. 에이와란 무엇인가 - 초월적 존재에 대한 영적 탐구

영화 속 에이와는 판도라의 '대자연의 어머니'로 묘사됩니다. 구체적인 형체는 없지만, 행성 전체의 생명과 의지를 관장하는 존재입니다.


사실 이런 설정은 지구인인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습니다.


에이와는 인격신이 아닌 범신론적 존재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가 대지 그 자체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처럼, 에이와는 판도라 행성 전체에 내재한 생명력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위대한 영(Great Spirit)' 사상, 일본 신토의 '가미(神)', 그리고 도교의 '도(道)'가 모두 에이와와 유사한 개념을 공유합니다. 이들은 모두 자연과 분리된 초월적 신이 아니라, 자연 안에 내재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을 초월하는 영적 실재를 가리킵니다.


판도라 행성이 나무뿌리로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라는 설정은 불교의 화엄사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卽一切 一切卽一)'의 세계관이 에이와를 통해 구현되는 것입니다. <아바타>라는 제목 자체도 산스크리트어로 화신불(化身佛), 즉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취하는 육체적 형상을 띠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이 되는 과정은 단순한 육체의 전환이 아니라 영적 각성과 정체성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에이와의 설정은 지구 곳곳의 신화와 종교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뒤섞은 결과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에이와에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범신론적 존재가 선택적으로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에이와는 키리의 간절한 부름에 답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합니다.

키리는 그레이스 박사의 아바타에서 아버지 없이 잉태된 존재로, 그 탄생 자체가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한 종교적 상징성을 지닙니다. 메시아적 존재로서 키리는 에이와와 특별한 영적 연결을 가진 매개자입니다.


하지만 에이와는 모든 이의 부름에 답하지 않습니다. 망콴족이 화산 폭발로 재에 뒤덮일 때, 에이와는 바랑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구약성서에서 욥이 고난 속에서 신에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신적 존재의 섭리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며, 때로는 침묵으로 답합니다.


누군가의 부름에는 응답하고, 다른 누군가의 부름에는 침묵하는 존재.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에이와를 믿는 이들에게, 그 침묵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고, 전지전능하면서도 선택적이며, 자연 그 자체이면서도 자연을 초월하는 존재. 영화 속 에이와는 어쩌면 '응답하는 신'에 대한 인간의 오래된 열망이 투영된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와를 통해 영화는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주 안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더 큰 연결과 의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 앞에서 <아바타>는 단순한 SF 블록버스터를 넘어, 과학적 상상력과 영적 직관을 하나로 엮어냅니다.




<아바타 3: 불의 재>는 화려한 비주얼을 넘어, 가족, 연결, 공생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룹니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고, 무엇을 가족이라 부르며,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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