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재앙의 지리학, 로리 파슨스
제주 바다에 떠오른 해파리 떼, 점점 사라져가는 갈치와 한치. 제주 바다는 끓고 있다. 몇 년간 제주에서 지내며 자연과 가까이 호흡하다 보니, 이전보다 조금은 더 자연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제주의 바다는 한국 그 어디보다 맑고 깨끗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켠에 불안이 스며든다.
올 여름, 의료봉사를 위해 몇 주간 필리핀 다나오 시티에서 지냈다. 이 곳은 관광지 세부에서 멀지 않지만, 극심한 가난과 불법 총기 제조로 악명 높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도시였다. 몇 년 전, 수만명의 근로자를 수용하던 중공업 공장이 정치적 문제로 가동을 중단하자 도시의 기반은 한 수간에 무너졌다. 아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병원에 가지 못한 환자들은 길거리에서 죽어갔다. 어선은 바다 위 쓰레기를 헤치며 빈 그물만 퍼올렸고, 배수 시설조차 없는 도로는 열기 속에서 악취를 풍겼다.
공장이 근로자를 착취했는지, 폐수와 소각으로 오염을 유발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 곳의 많은 것은 변했고, 주민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장 이전의 전통적인 생계 수단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었다.
로리 파슨스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탄소 식민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북반구의 선진국은 탄소 중립을 외치며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소비를 위해 남반구 국가들에 공장과 오염을 떠넘긴다. 글로벌 기업은 길고 복잡한 공급망 뒤에 오염과 착취를 철저히 숨겨왔고, 우리의 값 싼 소비는 결국 그 착취의 고리에 연결된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자연의 변덕이 아니었다. 정치적 갈등, 경제적 착취, 기업의 탐욕 같은 사회 구조가 사람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숲과 바다, 마을이 무너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 때문이다. 그래서 기후 위기는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경제적 재난'이라는 것이다.
환경이 파괴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대체로 기후보호에 동의하고 '친환경'이라는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정작 기후 이야기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주제가 되곤 한다.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환경 운동가들은 ‘개인‘의 행동 변화를 촉구한다. 일회용 컵을 쓰지 말라, 쓰레기를 줄이라, 소비 습관을 바꾸라는 말들 말이다. 물론 옳은 지적이다. 실제로 기후 변화의 실체가 눈에 띄게 다가오면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고,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제로 웨이스트' 제품이 트렌디해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러한 노력만으로 '탄소중립'에 이를 수 있을까?
파슨스는 이 지점에서 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녹색 성장', '유기농', '공정무역'과 같은 구호가 붙은 제품들 속에는 진실보다 이미지가 우선한다. 소비자가 열광하는 친환경 이미지는 때로는 철저한 위장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린 워싱'이다. 세계화를 거쳐 글로벌 공급망이 길고 복잡해진 오늘날, 그린 워싱은 더욱 교묘해졌고 소비자가 그 실체를 파악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책장을 덮은 후,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심코 고른 옷, 생활 속 물건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고통과 파괴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문제를 개인의 양심적인 소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도 절실히 느꼈다. 제로 웨이스트나 친환경 소비처럼 개인의 실천에 의존하는 윤리적 소비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재앙은 구조에서 비롯되었기에, 구조를 바꾸는 힘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력감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은 개인이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회를 요구하느냐'이다. 기업의 녹색 마케팅을 경계하고, 그린 워싱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법과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동참해야 한다. 작은 개인의 힘이 모여야만 거대한 구조를 흔들 수 있다.
다나오 시티에서 마주한 주민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기후위기는 단순히 더운 날씨나 잦은 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이었고, 그 안에서 불평등과 착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재앙의 지리학'은 그 현실을 나에게 다시금 각인시켰다.
조금 더 크게 바라보고, 조금 더 깊이 질문하고, 조금 더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더 큰 목소리가 모일 때, 탄소 식민주의의 사슬은 마침내 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