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2014
2024년 12월의 겨울밤, 나는 군인이었다.
포근한 침대 위에서 선잠에 들던 순간, 전국적인 비상소집명령이 울려 퍼졌다. 어머니의 염려를 뒤로한 채 급히 부대에 복귀하던 길, 대설(大雪)을 앞둔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온몸이 저릿하게 떨렸다.
부대로 복귀하는 차량들의 행렬은 위병소에서부터 길게 꼬리를 이어갔다. 평소와 다르게 모든 차량의 뒷 자석과 트렁크를 꼼꼼히 확인하는 보초들의 표정은 어딘가 낯설었다. 복귀 후에는 어떠한 명령도 없이 대기만 이어졌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뉴스 화면 속에 비친 장면뿐이었다.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의 마스크 너머로 설핏 비친 앳된 얼굴은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들은 어떤 마음으로 저 자리에 서 있을까.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저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길, 그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그날의 나를 비추었다. 책의 마지막 장, 에필로그에는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과 ‘특별하게 소극적인 군인들’이 묘사된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캄보디아에서는 이백만 명도 더 죽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몇십 만원씩 포상금을 내리며 잔혹성을 독려했다. 실제로 군인들은 상부의 명령과 포상금을 좇아 서슴없이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 그러나 동시에 부상자를 업어 병원 앞에 몰래 내려놓거나, 총구를 하늘로 올려 쏘고, 시신 앞에서 군가 합창을 거부하고 입을 굳게 다문 병사도 있었다.
군대라는 조직은 특수한 상황을 전제한다. 평소와 다른 윤리를 요구받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곧 생존과 승리로 이어진다. 당시 경호실장의 말대로, 1964년 베트남 전쟁으로 차출된 한국군은 뛰어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했고 나라의 위상을 높였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논란과 전쟁의 잔인성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가치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전투를 벌인 일부 군인들은, 시간이 흘러 1980년 광주에서의 폭력을 지시했다. 다만 그 목적은 달라졌다. 이념 간의 전투에서, 독재를 위한 학살로. 이 두 사건을 같은 선 상에서 볼 수 있는가? 명령을 따랐던 군인들의 행동은 합당해지는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소설 속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겁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인간의 잔인성은 비극의 역사를 답보한다. 제주 4.3과 광주 5.18를 거쳐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소설 속 인물들은 무자비한 권력 앞에서 무참히 꺾이고 부서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내 작지만 저마다의 형태로 저항을 이어나간다. “우리의 소중한 꿈들이 짓밟히고 있지만,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우리의 힘이다”라는 대사처럼, 그들의 의지는 끝내 꺼지지 않는다.
처음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소년이 온다’일까. 다소 무거운 주제와 달리 제목은 어딘가 가볍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년이 아니다. 친구를 잃은 소년에서 시작해서, 동생을 잃은 누나, 동료를 잃은 젊은 남녀, 자식을 잃은 어머니까지 다양한 사람의 시점이 묘사된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 ‘소년’은 단순히 동호라는 인물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소년이라는 보통 명사를 통해 폭력 앞에서 부서지고도 끝내 저항을 이어간 모든 이들의 마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편적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한강은 노벨문학상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아마 소년은 폭력에 맞서는 이 작은 가능성과 의지, 그리고 기억을 상징하는 이름일 것이다.
‘소년이 온다’ 속에 ‘특별하게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듯, 이번 계엄 사태에서도 명령을 거부하거나 끝내 저항한 이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비극의 역사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폭력이 남기는 상처를 기억하고, 그에 맞서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폭력은 녹슬고, 그 위에 의지는 다시 꽃 피울 것이다. 그 믿음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년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