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드라마, 2025
언젠가부터 나는 의학 드라마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의학 드라마는 내게 슬기롭고 상상력 가득한 세계였다. '닥터 하우스', '그레이 아나토미', '굿닥터' 시리즈를 볼 때면 추리 소설을 읽는 것 마냥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의사가 된 이후, 의학 드라마는 어쩐지 불편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매체가 쏟아지는 지금, 영상 매체는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끌어내고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매 화마다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드라마는 그래서 자극을 택한다.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우리가 의학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희생, 헌신, 사랑, 사명감. 모든 긍정적인 말을 덧붙여도 부족할 만큼 고귀한 무언가다. 우리의 삶은 모두 '생명'이라는 뿌리에서 나오고, 의학은 그 뿌리를 지탱하는 학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의료사고, 비리, 욕심, 그리고 죽음으로 가득한 뉴스 기사들은 짐짓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자극적인 모습만을 비춘다. 의학이라는 무형의 상징을 실체화하는 것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그 복잡한 원인에 대해서는 우선 차치하고(의료 수가, 의료전달체계 등), 결과만 보았을 때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은 자명하다.
예술가들은 종종 현세대의 문제를 창작물로 풀어낸다. 창작물을 통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저마다의 예술적 기법으로 해소시키는 시도를 한다.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철학과 신념으로 하나씩 풀어가는 경우도 하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초자연적인 힘'을 호출하는 것이다. 고대 연극에서 신의 개입으로 난국을 타개하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현대 서사는 초인적인 힘을 지닌 '히어로'를 불러낸다.
히어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한다.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를 단칼에 끊어낼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깊고 어두운 문제일수록, 그 간극은 더욱 크다
드라마 속 백강혁은 그런 히어로다. 현실의 틀을 뛰어넘어 시대의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초인적 존재. 그가 맞서는 대상은 외과 과장도, 병원장도 아닌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그 자체다.
아마 이것이 이 드라마가 기존 의학 드라마와 구별되는 지점일 것이다. 흔히 의학 드라마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이상적인 의사를 등장시켜 주변 의료인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악마화한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하여 의료의 이상향을 제시한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왠지 모를 불편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세부적인 연출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중증외상센터는 '의학 히어로 드라마'라는 장르적 힘을 빌려 한국 의료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바로 그런 히어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