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다가 온 한 줄기 희망
신기하지? 내 인생.
고등학교 때까지 급식비안내도 먹을 수 있는 소득이었는데 운동을 했고 국내여행도 못 가서 수학여행을 망설였는데 미국을 가다니.. 난 축복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매우 달랐고 비참했다.
비참했던 이유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부터 내가 왜 미국에서 살 수 없는지에 대해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했고, 가진 게 없었고, 특기도 없었고, 허황된 꿈을 꾸고만 살아서 안된다는 걸 알게 해 주려고 보낸 느낌이었다. 딱 3주였는데 일주일 채 안 된 날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안된다는 걸 듣고 매일 울었다. 그래도 끈질긴 성격 탓에 기도는 했다.
어쩌면 한 번쯤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매달리기도 했다. 하늘을 보며 펑펑 울었다. 그 18살엔 외로웠지만 5년이 지난 22살에 난 외롭진 않았다. 2년 만난 남자친구도 있었고 대학을 잘 가진 못했지만 직업이 보장된 학교였고 성적이 좋아 학비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꿈을 포기할 수없었고 하기 싫었는데 현실에서 보니 그냥 나는 안 되는 애였다고 생각했다. 나를 너무 가엽게 본 탓에 마지막이라도 누리라고 보내준 느낌이었다.
너무 우울하고 아프고 쓰렸다.
이별을 경험해보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이별을 겪은 느낌이었다. 매몰차게 이별을 당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씩씩했다. 나름 성인이 되었다고 어른인척을 했기 때문이다.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 머릿속에는 한 문장만 맴돌았다.
"이래서 안 되는구나" "이래서 난 못 사는 가난을 계속 살아내야 하는구나" 참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쉬운 성격이다.
좌절도 참 쉽다. 근데. 고집이 엄청난 건지 꿈이 너무 간절했는지 그 꿈을 포기하기엔 22살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내가 22살 땐 코로나였다. 36시간 안에 음성이 나와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백신을 2차까지 맞아야 돌아다닐 수 있던 시기였다. 어떻게 온 미국인데, 나에게 미국은 너무 가혹했다.
한국에서의 설날쯔음에 같이 간 분의 조카가 4 시간 걸려 우리를 데리러 왔다. 조금이라도 둘러보고 쉬다 가라고 그 먼 거리를 운전해서 데리러 온 것이다. 다시 돌아가는 4시간 동안 왜 미국에 오고 싶은지 물으셨다. 나는 말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분에 입에서도 미국에서 사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한번 더 자책했다. 운동하지 말걸, 공부나 할걸, 아무리 집이 어려워도 전문직 가질걸 하고 말이다. 2주 동안도 우울했는데 그 4시간은 날 엄청나게 깊은 동굴로 빠지게 했다.
이 내용을 읽다 보면 왜 제목이 Yellow 일까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 한줄기에 희망이 뭘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 희망은 4시간을 걸쳐 간 그곳에서 만난 조카분의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나에겐 희망이었다.
"너 운동했다고 했지? 직장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라는 말 한마디였다.
매번 부정당하던 모든 순간이 씻겨나가고 난 희망을 느꼈다.
신이나야 하는데 나는 속으로 엄청나게 울었다. 또 실망할까 봐, 하지만 달랐다. 정말 나에게도 희망의 색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희망을 대표하는 노란색.
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노란색의 시절도 지금 생각하면 참 귀하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 살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