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불 한 끗차이
난 살아냈다. 미국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내가 겪은 계절 중 가장 뜨거웠던 계절의 시간은 미국에서의 삶이었다.
누군가는 워라밸이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사람 살기 좋은 나라라며 부러움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정말 그 모든 말이 나 같은 이에게도 해당되는 걸까?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모든 것은 벅차고 설레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런 크고 잘난 나라에서 일할 자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속에서 작은 불꽃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올랐다.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시작이었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하루들이 쌓일수록 우리나라에서 지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왜 아팠는지 그들의 침묵 뒤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낯설고 조심스러운 환경, 말 한마디에도 내 자리가 흔들릴까 봐 신경 곤두세워야 하는 하루들.
그리고 어느 날 누가 말했다. “여긴 한국인만 조심하면 안전한 나라야.”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가까울수록 믿음이 깨지는 일도 더 쉽게 찾아온다는 것,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같은 마음을 가진 건 아니라는 것. 미국의 계절이 왜 빨간색인지 나는 조금씩 알게 되어 갔다. 잘 갖춰진 길도, 선택의 폭도, 자유도 분명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면’이라는 단 한 줄의 조건이 붙는 순간 삶의 온도가 달라졌다.
낯선 언어 속에 부딪히며 지쳐가던 날들 그곳에서의 계절은 늘 뜨겁고, 때로는 아팠다.
그 뜨거움은 햇빛 때문이 아니라 그저 버티며 살아내야 했던 나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 아팠고, 누구보다 뜨거웠다. 몸도 마음도 쉽게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큼 더 살아 있었다.
아픔이 쌓일수록 열정도 자라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던 시기. 무엇 하나 가볍지 않았지만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타올랐던 때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계절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다. 쓰라린 기억도, 벅찬 열정도,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뜨거운 마음까지 모두 같은 색으로 겹겹이 남아 있다. 그 계절 속의 나는 아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 있었고, 그 뜨거움은 여전히 내 안에서 조용히 빛을 낸다. 지금도 그 빨간 자국의 여운이 가슴 한편에 깊게 물들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아프다. 그런데… 후회는 없었다.
그 계절의 나는 열정과 불은 한 끗 차이였다.
조금만 더 뜨거워지면 타버리고, 조금만 덜 뜨거우면 꺼져버릴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사람들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대체 내가 무슨 일을 겪었길래 그렇게 아프고 쓰렸는지.
또 어떤 이들은 말하겠지.
“세상 사는 게 다 힘들지, 뭐.”
맞는 말이지만,
그 계절의 나에게 닥쳤던 일들은 누구에게나 흔하게 스쳐갈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뜨거웠고, 왜 그토록 쓰라렸으며, 왜 아직도 그 계절을 잊지 못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는… 스쳐 지나가는 일들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