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관계의 종말
관계에서 가장 슬픈 순간은
상처를 받았을 때가 아니다.
상처를 줬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과
그 상처를 견뎌야 할 때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런 일로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이런 반응은 고통을 이중으로 만든다.
상대의 무지, 혹은 무관심이
상처를 더 깊고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나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 착각한다.
내게 별일 아닌 일이
상대에게는 큰 아픔일 수 있고,
내가 잊은 말 한마디가
상대에겐 아직도 생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감각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관계는 일방적인 감정의 누수로 흐른다.
한쪽은 계속 해명하고,
다른 쪽은 계속 참는다.
그 반복 속에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지쳐 나가떨어진다.
문제는, 상처를 준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자기 기준’에서만 본다.
“내가 왜 그래야 돼?”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참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은 결국,
상대의 고통을 불인정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상처는 인정받을 때 아물 수 있다.
“그렇게 느꼈구나.”
“그땐 내가 생각이 짧았어.”
이 짧은 말 한마디가
무너진 감정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혹은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단단한 벽을 만든다.
그 벽은 감정이 쌓이면서
더 높고 두꺼워진다.
그러다 결국
“그 사람은 날 몰라.”
“아무리 말해도 달라지지 않아.”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상대와의 신뢰는 바닥나고,
남는 건 체념뿐이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도
이 무감한 상처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상처를 주고도 모른다는 건
결국 관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이 쌓이면,
그 관계는 더 이상 ‘관계’라고 부를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어?”
그건 반성이 아니라 변명이다.
진심으로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되짚으며
상대의 고통을 함께 느끼려 한다.
관계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관계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알아봤다면,
그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함께 머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처는 모른 척하면 깊어지고,
인정하면 줄어든다.
그 단순한 진리를 아는 사람만이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지킬 수 있다.
지문 : 질문이 바꾼다.